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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 Apr 16. 2021

재미있는 아이
예의 바른 아이

친구를 재단하는 잣대


 내가 어린 시절, 어른들은 늘 의심이 많았다. 용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부터 해서 공부를 안 하고 놀고만 있지는 않은지, 친구와 나쁜 짓을 하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나쁘게 대하지는 않는지 등 어린 우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의심하고는 했다. 그리고 위험한 장난을 쳐서 크게 다칠까 봐 계속 '하지 마라'는 말들을 많이 했다. 가뜩이나 소심했던 나는 그런 말들을 따르다 보니 급기야 끊임없는 자기 검열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 나서 상대방이 어떤 지점에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지 여러 번 되새기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이 참 재미없었다. 월요일마다 있었던 조회시간에는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가만히 있기 위해 노력했고,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 일쑤였다. 튀는 행동을 하면 혼이 날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이 많아서 혼나기 싫었기에 그저 조용히 있었다. 그렇게 별로 몸을 쓰지 않다 보니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해서,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강박증이 시작되고 말았다. 


 강박증의 시작은 물건을 제자리에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쓰지 않은 것처럼 돌려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눕기 전에 의자와 책상의 각도에 집착했다. 바퀴가 달린 의자의 등받이가 곡선이었는데, 그 양끝 지점이 책상과 정확하게 평행이 될 때까지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맞추고는 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초등학생 1학년 말쯤에 어깨를 다친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완전히 낫고 나서도, 어떻게 해도 어깨가 불편하게 느껴져서 편안한 자세를 찾으려고 계속 자세를 고쳐 잡다 보니 쉬이 잠들지 못했다. 




 딸아이는 재미있는 아이를 좋아했다. 그래서 딸아이와 친한 친구들은 자유분방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째서 저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뻔뻔하게 자기 의견을 다 말해도 미안해하지 않는 걸까. 왜 저렇게 예의 바르지 않은 걸까.

 결국 나는 어린 시절에 모든 것을 참아야 했던 내가 불쌍해졌다. 부모가 이혼을 한 아이도, 부모가 보살펴주지 않는 아이도 나처럼 우울한 게 아니라 나름대로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해결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보급된 시대이기도 하고, 맞벌이 부모들은 간식이라도 사 먹으라고 용돈을 많이 주기도 했다. 나는 불쌍한 아이를 부여잡고 대신 울어주고 싶었지만, 내 마음에 부합하는 아이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사실에 화가 났던 것 같다. 결국 해결해야 할 것은 여전히 내 안에서 줄기차게 어리광을 부리지 못한 채 슬픔을 동여매고 있는 어린 나였다. 




 나는 사춘기 시절에도 분노를 발산하지 못했다. 발산되지 못한 분노는 나 자신에게로 향했고, 잦은 충동 욕구에 시달렸다.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다 서 있는 조례 시간에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리거나 앞으로 뛰쳐나가는 상상을 계속했다. 수업 시간 도중에는 공중에 대고 확 고함을 질러버리는 상상을 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는 중학생 때에 간 수련회에서 캠프 파이어의 불꽃을 보는 내내 그 불꽃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상상을 했고, 택시를 탈 일이 있으면, 그 택시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내릴 때까지 계속했다. 


 감정표현마저도 검열하던 나는 분노와 짜증도 낼 수가 없어서 그렇게 속으로 곪아갔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음악을 들으면서 펑펑 울기 일쑤였고, 때로는 저녁에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아서 새벽 5시쯤에 자다가 깨어나 고통스럽게 토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그대로 집어삼켜 먹고는 나 스스로를 죽이고 있었다. 


 그때의 우리 가족에게 유머와 재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조금이라도 편안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웃들과 어울리며 즐기고, 친구들과 허물없이 놀 수 있었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사소한 말 한마디, 말투 하나에도 수없이 고민했던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비난과 조롱이 아닌 건강한 유머와 재치로 마주 볼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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