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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 Apr 16. 2021

아들인 듯 아들 아닌

천생 여자


 나는 가정 내에서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그마저도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하면 얄짤 없이 아웃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오랜 기간 그랬었다. 엄마는 그래서 점점 언니를 감싸고돌았다. 부모 중에 한 사람이 대놓고 차별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언니는 대놓고 차별하는 아버지와 대놓고 감싸지 못하는 엄마 사이에서 두고두고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결코 나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온전히 결합하지 못한 부부의 갈등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박힌다. 언니는 외갓집에서 첫 손녀로 이모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나는 그나마 공부를 조금 잘한다는 이유로 친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끝끝내 엄마는 아버지와 시댁을 인정하지 않았고, 아버지 또한 끝끝내 엄마를 인정하지 않았다. 외가의 장녀였던 엄마와 친가의 (장남이 아님에도) 장남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계속 상처를 받는 건 언니와 나였다. 우리는 가까워지기가 너무 힘들었다. 끊임없이 우리 사이로 차별의 강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꾸준히 나를 편애했고, 나는 꾸준히 그에 부응했다. 그렇게 나는 서열 2위가 되었다.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형제 서열을 역전한 것은 물론이고, 엄마의 서열마저 역전했다. 아마 대부분의 장남과 같은 위치였을 것이다. 장남의 위치였던 나는 겁이 많고 소심한 내 성격이 싫었다. 우리나라는 약자를 보호하지 않은 채 강자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권위주의'의 사회이다. 대체로 의사결정권자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이었고, 어머니들은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받기 일쑤였다. 그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싫었다. 언제나 어리석거나 나약한 존재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점차 남자처럼 행동하고 싶어 졌다. 그리하여 자기부정을 거쳐 비틀린 정체성과 지나친 경계심으로 무장한 채 세상과 싸우려 했었다. 




 남자처럼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심했던 시기는 고등학교 후반과 대학교 초반이었다. 고 2일 때의 내 바람은 군대에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키가 180cm에 달할 정도로 커져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랐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채로 박스티에 힙합바지만 입고 다녔다. 주변 여성분들이 하나씩 말해 주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이 티가 난다', '털털한 성격이 아닌데 털털한 척하는 것 같다' 등. 나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들이었다. 조언을 받아들여 옷차림을 조금씩 고쳐나가는 와중에도 행동만큼은 남자처럼 했다. 동아리에서 무거운 것을 마다하지 않고 들었고, 언제나 남자를 이기려고 했다. 등산을 할 때에도, 직장에서 일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 동기에게 뭘 가져오라고 시키는 여자 동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생물학적인 성별이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으로 받는 차별을 다 받으면서, 남성으로서의 책임감까지도 짊어지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점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성 역할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장점이 되기도 했으니까.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에 일어났다. 나는 사회 속에 있을 때에는 아버지처럼 행동했고, 육아를 할 때에는 불쑥불쑥 엄마처럼 행동했다. 무척이나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서 드러날 때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일거리 속에서 아이의 칭얼거림을 받아주는 게 버거우니까 익숙한 엄마의 모습이 불쑥 튀어나오고, 그러고 나면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좌절하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분노는 시도 때도 없이 좁은 틈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정신없는 영아기를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주변 이웃들과의 교류가 힘들었다. 나는 웬만한 애엄마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내가 겪어 온 엄마보다 잘하는 애엄마들은 질투했고, 내가 겪어 온 엄마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애엄마들은 엄마에 대한 미움을 투사해서 싫어했다. 그런데 그 어떤 감정도 제대로 표출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나의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을까 봐 안에서 삭히려고 노력했고, 미처 삭히지 못한 감정이 아이에게 불똥을 튀기기도 했다. 나는 내 안에서 어떠한 동력도 꺼내지 못한 채 하루하루 무너져 갔다. 


 결국 나는 엄마를 똑바로 응시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착하지 못해서 실체조차 잡히지 않는 엄마를 비롯하여, 결국은 서로 화해하지 못했던 양쪽의 부모를 제대로 직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속에 잠재해 있는 분노와 미움을 떨쳐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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