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 더 원더랜드
자우림 더 원더랜드를 보고 와서 감상평을 쓴다는 게 자꾸 미뤄졌는데
더 미루다가는 이 기분이 사라질까 걱정되어 적어본다.
내가 처음 자우림을 본 날은 1997년 12월 아님 1998년 2월 둘 중 하나다
사실 12월로 기억을 하는데 벌써 오래전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기말고사가 끝난 고등학교 일정의 느슨한 틈을 타 자우림을 보러 갈 수 있었다.
당시 지역 백화점 꼭대기 층 문화센터 소극장에서 매주 유명한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이 있었고, 연계된 지역방송국의 야심 찬 기획 덕분으로 드디어 자우림을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라이브 소극장 강화도어 앞에 1등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던 그 설렘과 자리로 뛰어가 앉았을 때
그리고 무대 앞 레일 위로 다니던 카메라가 내 앞에서 빨간불인 걸 확인했을 때 그 두근거림이란
(몇 주 뒤 방송으로 본 티브이 속의 내 얼굴은 정말 터질 듯한 하얀 달처럼 동글동글 그 자체였다.)
자우림
사실 내겐 "김윤아"라는 언니를 보는 게 목적이었다.
티브이로도 멋진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멋있을까?
내겐 어른 여자의 표본 같았다.
곡을 쓰는 능력자에 노래와 기타! 거기에 신인답지 않은 서투름이 없어 보이는 태도.
내가 몇 년 뒤 그녀의 나이가 되면 저런 모습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 한가운데 노래를 부르러 섰을 때
나는 걸리버여행기에서 소인국의 사람처럼 작아지고 한없이 언니만 크게 크게 보였다.
그렇게 내 10대와 20대는 자우림과 함께였다.
자우림의 노래가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면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거라 희망을 품었고,
나 하나 갈 곳 없고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을 "팬이야"와 "샤이닝"으로 달랬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육아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눈보다 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귀는 항상 열어놓아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할 수 있으니
나에게 더 이상 음악적 취향을 물어볼 수조차 없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가던 어느 날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내 맘에 들어왔다.
그날은 드디어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점심까지 먹고 하원하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햇살은 끝내줬고
나는 어린이집에 둘째를 보내고 내리막길을 홀가분하게 내려왔다.
그전에도 이 노래를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이런 감정의 파도가 칠 거란 생각도 못 한 채
노래가 시작되었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지~ "
눈물이 차올랐다.
이렇게 행복하고 허무한 시간이여.
소중하지만 허상 같은 하루하루여.
길가의 벚꽃이 바람에 날려 작은 회오리를 만들면서 주위를 돌아다니고
내 삶의 찰나 같은 순간을 잊지 못할 영원으로 바꿔놓았다.
영화 "자우림 더 원더랜드"는 그렇게 늘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준
"자우림"의 역사이자 우리의 이야기였다.
나 역시 자우림의 노래로 위로받고 함께 걸어 나갔고
또 다른 수많은 이에게도 그러한 밴드가 되었다.
비록 지금은 다른 밴드가 으뜸이가 되었지만
영원히 내 맘 속 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저 영원히 오래 가고 싶은 길로 나아가길 응원하고 지켜보고 지지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지금의 내 밴드도 자우림처럼 되어 주릴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