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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즈 Oct 07. 2023

담을 넘어 출근

노동조합을 시작하다(2)

  둘째를 낳고 1년을 조금 못 채우고 복직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금방 적응했고 나도 예전처럼 노동조합 활동으로 돌아갈 마음도 먹었다. 다만 약간 망설였던 부분이 있었다. 내가 쉬는 동안 조합에 변화가 있었던 것. 함께 시작했던 조합의 임원들은 서로 뜻에 따라 소속을 달리하고 있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임원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회의가 있었다. 기존 노조의 한계상황을 알고 다른 노조와 함께 모아서 운영하는 게 맞다 와 더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적극적으로 활동을 할 상황이 되지 않던지라 의견을 강하게 내기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구성원의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휴직의 시간 동안 노조 상황에도 조금 변화가 있었다.          

  

  복직을 하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시 기존의 노동조합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싶었다.

  다만 자신이 없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노동조합 일을 할 수 있을까? 아이가 하나에서 둘이 되었지만, 주변 상황은 바뀐 게 없었다.  여전히 바쁘고 혼자였다.

  두 가지 감정으로 혼란스럽기도 했다. 둘 다 잘하고 싶어서 마음이 힘들었다. 함께 활동했던 분에게 전화를 걸어 슬며시 내가 복직해서 다시 일하러 나왔다고 일상적인 대화를 해보았지만, 함께 일하자는 말은 없었다.  직접적으로 하자고 말하기에는 내 용기가 부족했고, 아마 같이 일하자고 하기에는 상대도 부담스러웠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지금 일하는 노동조합에서 손을 내밀어줬다.           

 "주사님, 복직도 했으니 이제 다시 슬슬 시작해야죠."          

  고마웠다. 아이도 둘이나 있고 정신없이 사는 게 뻔한 사람이지만 같이 일하자고 손 내밀어주는 게 기뻤다.           

 "이제 아이가 둘이라 예전처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바쁘면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하면 되지요."                    

  그렇게 다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말은 열심히 하겠다고 했지만 정말 녹록지 않았다. 아이가 둘이다 보니 각종 감기, 수족구병, 장염을 둘이 함께 번갈아 가면서 아팠다. 한 달에 삼 주는 소아과 정기 방문이라고 보면 될 정도였다. 학교 일도 만만찮게 쏟아지고 개인적으로 짬을 내서 노동조합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 가끔 시간이 날 때 메시지를 작성하거나 연가를 쓰고 방문할 곳이 있으면 함께 하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맘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괜찮다고 지금 할 수 있는 부분만이라도 같이 하자고 말해줘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                    

  


  

  활동을 하며 찍은 사진 중에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 하나가 있다. 휴대전화를 몇 번 바꾸면서 원래 사진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개인 SNS에 올려놓았던 지회 회의 사진인데, 길게 늘어진 테이블에 함께 앉아서 아이들에게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여가며 회의하는 사진이다.

  사진 속 구성원은 어른이 5명에 아이가 6명. 퇴근 후 지회 회의 시간. 어린아이를 둔 사람들은 아예 애들을 데리고 모였다. 그날 나는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서 회의도 참석해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냥 같이 모여서 회의하고 밥도 먹자는 것으로 의견이 나왔더랬다. 장소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렇게 우리들은 아이들 저녁 먹여가며 회의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사진 속 아이들은 벌써 커버려 이제 같이 어디 가기도 쉽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이 사진 하나로 내가 지금껏 일할 수 있었던 모든 게 설명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게 있었다.                    

- 회의는 짧고 간단하게          

- 술을 먹거나 해서 늘어지지 않게 그리고 얼른 집으로 돌아간다.          

- 가족에게 잘해야지 노동조합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다                    

  나를 제외하고 지회 사람 전부 남자분들이었지만 다들 아이가 어리고 양육에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덕분에 같이 있던 사람들 모두 지금까지 조합활동을 하고 있다.

  가족과 가정을 늘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있었던 힘들고 지치던 순간을 다 풀어낸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굳이 말씀드리고 싶진 않다. 아마 다들 어느 정도는 예상할 거란 생각도 하고 말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우리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얼핏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성과를 내지 않고 하나의 조직에서 계속 일을 한다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성과를 내지 않는 조직은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존의 틀을 부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새로운 이익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과감한 시도와 새로운 도전을 해볼 것이다. 본인을 위험하게 하고 그 길이 예측 불가능하더라도 도전해 볼 만하니까. 하지만 성과를 내지 않고 현상 유지만으로도 조직이 유지된다면 누가 도전을 할까? 이런 조직 속에 노동조합 활동은 오히려 새로운 도전이 가능한 분야다.          

  또한 교육행정직이라는 직렬은 태생적으로 교육의 주체가 되기 쉽지 않다. 아무리 주위 환경을 바꾸고 시책을 진행하려고 해도 결국은 교사와 학생의 주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우리가 열심히 해도 그 사업의 대부분은 교육청의 교육사업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 노동조합 활동은 그 속에서 내가 주체가 되어서 일하는 순간을 찾는 기회가 된다.          

  난 노동조합에 더 많고 다양한 나이와 직급, 직렬들이 들어와 활발히 활동하길 바란다. 조직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지만 조직화하여 있는 집단만이 개인을 보호할 수 있다. 모여서 이야기하고 떠들고 부딪히고 공감하고 그렇게 지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서로를 너무 모르니까.

  

  우리에게 쳐있는 담을 넘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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