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그 힘을 조직화하고, 사용자와 동등한 입장으로 협상테이블에 앉아 단체협약을 이루어 낸다.
단체협약
노동자와 사용자 측이 만드는 자체 노동법규. 어쩌면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체협약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체협약은 사업장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노동자들이 본인의 요구를 모아 사용자 측에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단체협약이 체결되면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업장에서 조합원이 아니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고른 혜택은 표면적으로는 노동자에게 이로운 일이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무임승차자를 늘려 노동조합의 원동력인 결집력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혜택을 받게 되니 굳이 개인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가입해야 할까? 나 정도는 빠져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본연의 사업추진에 몰입해야 하지만 조합 유지를 위해서 무임승차하고 있는 사람들도 가입하도록 설득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교육행정직의 경우 다른 공무원 조직과 달리 한 건물 안에 모여서 근무하는 게 아닌 뿔뿔이 흩어져 학교에서 근무하게 된다. 한 건물 안에서 너도나도 가입해서 모두가 자연스럽게 조합원인 분위기가 형성되기 어렵다. 서로 가입 여부를 알 수도 없다. 그러나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가고 있다.
실제로 우리 교육청 소속에 많은 노동조합이 있고 그들은 각자의 조합원을 늘리기 위해 경쟁 중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가입률은 눈에 띄게 늘지는 않는다. 결국 온건적으로 보이는 비조합원의 단체협약 대상 범위 포함이 다른 방향에서는 노동조합 성장에 방해가 된다.
비슷한 성격으로는 복수노조의 허용이다.
복수노조 허용은 1997년 복수노조설립에 관한 금지조항이 삭제되면서부터 허용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사측은 그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 그보다 먼저 어용노조(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조합)를 만들어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방해하고자 했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복수노조설립이 허용되었다.
본격적인 복수노조의 허용은 2010.1.1.「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됨에 따라 2011.7.1.부터 사업(장) 단위에서 2개 이상의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업 단위 노동조합은 물론, 기업 단위에서 2개 이상의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노동자는 자유롭게 노동조합 설립이 가능하게 되었다. 누구든 의지만 있다면 사업장 내 노동조합 설립은 몇 개든 가능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노조의 탄생은 기존 노조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을 결집해 그들을 노동조합의 일원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또한 내부 집단 속에 노동조합 활동에 긍정적인 생을 가지는 새로운 무리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노조의 탄생 후 각자의 노조원을 지키고 늘리기 위한 경쟁은 분열과 소모적인 싸움을 만들기도 한다. 결집의 힘으로 사측과 대응해야 하지만 노동조합 유지라는 큰 장애물이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노동조합의 가장 큰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단체협약.
이렇게 복수의 노동조합이 있다면 노동조합과 사측은 어떻게 단체협약을 진행해야 할까? 보통 단체협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1사 1노의 원칙으로 사측과 노조 측이 1대 1의 구도로 협상테이블에 앉는다. 노조가 하나 이상일 경우도 하나의 단체로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창구 단일화가 요구된다.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서 사업자와 교섭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동조합은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여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정해야 한다. (같은 회사 안이라도 업무의 성격이 현저히 차이가 날 경우는 개개의 노조별로 분리하여 단체협약이 가능하다.)
결국 노조를 여러 개 만드는 것은 자유지만 협상테이블은 하나의 단체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설립의 자유는 얻었지만, 교섭의 자유는 잃어버렸다.
복수노조에 대한 우려는 여러 매체에서 지적하고 있다. 과연 복수노조가 노동자를 위한 것인가? 사측이 어용노조 설립으로 노동자의 결집을 막았다면, 역으로 노동자가 하나의 노조를 만들어 결집한다고 해도 새로 어용 노조를 만들게 된다면 결국 단체협약은 함께 조율해야 한다는 문제까지 그대로 떠안게 된다. 어용노조가 협상테이블 구성 자체를 태만하고 여러 핑계를 대면서 거부한다면 결국 단체협약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 창구 단일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단체협약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내가 속한 교육청 소속 지방공무원 노동조합은 현재 총 5개다(2023년 기준). 이렇게 여러 개가 있는 배경에는 타 지방직과 다른 교육청 구성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같은 교육청 소속 지방공무원이라 할지라도 직렬별로 각자의 견해 차이가 크다 보니 하나의 노조에서는 그 견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컸고 그 결과 복수노조를 설립하게 되었다. 결국 교육청의 정책 방향이 다양한 직렬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직렬도 다르고 소속 노동조합도 다르다 보니 단체협약을 위한 협상은 몇 년째 진행조차 안 되고 있다. 첫 발걸음조차 떼기 어렵다. 나 역시 이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이유는 내가 바로 5개 노동조합 중 하나를 만든 설립 구성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11년 우리 교육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교육행정직은 큰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기능직의 일반직 전환이 예고된 것이다. 당시 8, 9급 일반직들은 이러한 내부적인 움직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막연히 다른 지방직 공무원들처럼 9급으로 전환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재 기능직 직급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알게 된 것이다. 전체적인 파이를 늘려 상위직급도 늘어나는데 왜 반발하냐는 의견들로 하위직 공무원은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기존의 노동조합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묵도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탈퇴의 움직임도 생겨났다.
분노한 8, 9급 공무원은 당시 싸이월드에 있는 클럽이라는 커뮤니티에 모여들었고, 거기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이 사태에 분노는 하고 있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까에 대한 이야기는 의견이 분분했었다.
당시에 나는 교육감을 상대로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연히 승소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위직급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교육청의 태도에 반발하기 위해서였다. 어떠한 모임의 대표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8급 학교 근무자였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게시판과 주위에 함께 참여할 사람들을 모으고 같이 소송을 진행할 동료들을 만났다.
교육감을 상대로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진행하며 사람들은 결집하기 시작했다. 일련의 소송을 준비하며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소송을 위해 모인 많은 사람은 노동조합을 원했고 그분들 대부분과 게시판이나 주위에 비슷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은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교육청 소속 노동조합은 하나가 더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고 10년이 더 넘게 지난 지금
현재 우리 교육청 소속 지방공무원 노조는 5개가 유지되고 있다. 교육청이 여러 정책이 현장이 반발이 있을 때 합치된 의견으로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여러 노조 간의 미묘한 입장 차는 사측에 득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
노동조합 내 구성원들끼리 생각이 다를 경우 서로를 어떠한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가 중요한 사항이었다면, 이제는 노조 밖에서 노조들끼리의 설득과정이 되다 보니 결국 소속 조합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조금 양보하고 서로 이해하려 해도 각자의 노조를 지지하는 노조원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지 않으면 노조의 색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이런 지루하고 무의미한 순간이 늘어나게 돼버렸다.
하나의 노조 안에서 서로가 치열하게 설득하고 의견을 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노동자를 위해 시도되었던 복수노조 허용과 단체협약 비조합원 수혜 가능성이 노동조합 운영에 더욱 짐이 되는 것 같은 요즘이다.
신규공무원 세대는 기존의 세대와 또 다른 세대의 차이가 있다. 개개인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고 무리 자체를 만들지 않는 시대 분위기는 노동조합 참여 자체에 관심이 더 떨어지고 있다. 세대의 변화와 복수노조로 인한 단체협약의 어려움은 노동조합 운영에 이중고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