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 필기에 합격하고 면접을 준비할 때였다. 그 당시 유행하던 면접 질문은 홈페이지에 어떤 메뉴가 어디쯤 있고 어디를 누르면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교육청 홈페이지를 다 외우고 배너에 뭐가 떠 있는지 전면에 배치한 정책사업은 무엇부터 시작이었는지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늘 물어보는 기본 질문에 대한 예상 답안은 준비했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은 "왜? 공직을 선택했는지"였다. 당시 내 대답이다.
"제로섬게임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공직이야말로 우리가 다 최선을 다할 때 서로의 이익을 나누는 것이 아닌 이익의 극대화가 되는 곳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 뜨거운 여름 교사들이 광화문에 모여있다.
언론은 말한다. 학생 인권을 중요하게 다루고, 아동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교권이 무너지고 있었다고. 인권을 강조했다고 교권이 무너지는가? 아니다. 그것은 학생 인권이나 아동 인권이니 하는 말을 빌려 본인의 추악한 욕구를 숨기던 사람의 변명일 뿐. 인권을 강조하는 곳에 다른 인권이 무너질 수는 없는 것이다.
큰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놀랐던 것은 학교에 숙제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받아쓰기, 일기, 독서록, 문제풀이, 방학 숙제 등을 반드시 내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다. 숙제를 안하면 큰일 나던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다니던 시절 학교를 생각하면 선생님이 내주신 문제집 풀기, 글씨 쓰기 교본, 독후감 숙제, 일기 숙제 각종 숙제가 많았는데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들 학원 숙제에 방해된다는 이유, 어려운 시험과 숙제에 아이들의 자존감이 무너지고, 아이들이 상처받는다 등등 강하게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님들이 많아지면서 학교의 숙제가 줄었다고도 한다. 이제 학교에서 기본적 학습을 가르치고 학습격차를 메우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오고, 메우지 못한 격차는 부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담이 되었다.
상처받고 좌절할 기회를 지금 없애버린다고 다가올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힘이 길러지는 걸까? 좌절하는 아이를 보는 게 힘든 게 아니라 그것이 본인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왜곡된 시선이 아이의 좌절, 상처, 실패를 경험할 기회를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 겉으로 보이는 학생과 교사의 갈등은 사실 학생 뒤에 서 있는 부모와 교사의 갈등이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에서 조사한 결과 교사들이 말하는 가장 큰 고충은 학생과 직접적인 대면이 아닌 학부모의 악성 민원인데, 학생인권조례를 이유로 학생 인권이 높아져서 교권이 낮아진 것처럼 말하는 언론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과연 인권이라는 분야가 누군가의 인권이 빼앗아 넘겨줘야 하는 제로섬게임일까?
학교 내부를 들여다보자.
학교의 구성은 크게 학생, 학부모, 교사(교직원)로 나누어진다. 교직원은 교사, 지방공무원, 공무직으로 나눠지고.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다시 보직별, 직렬별, 직책별로 나눠진다.
이렇게 나눠진 집단 중 한 곳에서 힘들다고 호소한다.
예를 들어 교사의 업무가 많다고 하면 그 업무의 소멸 가능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늘 학교 내 다른 집단에 넘겨주는 식의 정책이 나온다. 가만히 있던 다른 집단은 날벼락이니 반대는 심해지고 결국 내부 갈등과 대립의 모습만 보인다. 양쪽의 입장을 늘어놓는 사이 핵심은 흐려진다. 결국 해결을 못 한 채 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대로 옮겨가는 식이다.
성가신 업무를 넘기기 위한 눈치싸움이야 여느 회사에도 있다. 다만 학교의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외부로 나가 분열을 쉽게 드러낸다. 학교 구성원도 수년간의 반복된 잘못된 학습을 통해 우리 스스로 학교 내 집단을 세분화하여 인식한다. 결국 서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리를 높이기 위해서 다른 집단의 권리는 아랑곳하지 않는 식의 주장을 하게 돼버렸다.
학교는 왜 이렇게 제로섬게임의 장이 되어버렸을까?
상대방이 가진 권리와 편의가 나보다 크면 이는 부당하다는 식의 주장을 반복하게 돼버렸을까?
교육청은 이 모든 갈등이 학교 안에 있는 걸 알면서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까?
많은 단체는 본인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해치는 일이라면 들어보지도 않은 채 반대만 외치고 있을까?
서로가 하나의 공동체 속의 구성원이라는 걸 인식할 기회가 없다. 구분 짓고 나누고 정리해서 틀을 만들고 거기에 넣어놓는다. 교사와 교직원이라는 단어로 교묘하게 서로를 나누게 하고,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들, 누군가의 성과를 위해 매년 새로 만들어지는 학교 사업.
학교는 지쳤다.
뜨거운 여름 모여있는 모두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어 학교가 모두에게 안전한 곳 구성원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제발 의미 없는 공문만 만드는 정책이 아닌 부디 모든 이가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정책이 나오길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