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파업을 볼 기회
파업이 뭘까?
다음사전에 파업의 뜻을 찾아보자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의 유지 및 개선이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일제히 작업을 거부함으로써 사업자나 정부에 타격을 주려는 행위.'
나와 밀접한 일상생활에서 파업을 접했던 기억 얼마나 있었던가 생각해 보자, 외국의 파업을 언론을 통해서 보고 들었던 것 또는 국내 몇몇 대규모 노동조합의 파업을 제외하고 말이다. 마흔 중반인 내가 자라서 성인이 되는 동안, 아니 성인이 된 이후에도 파업에 참여하거나 파업을 직접 눈으로 볼 기회는 없었다. 당연히 뉴스나 신문 속 파업 이야기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내 생활에 직접적으로 다가올 일은 없었다. 그러던 파업이 나에게도 다가왔다.
2011년 경기도교육청은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1년 경기도교육청은 각종 업무경감 등을 외치며 공무직 정원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그 시기 많은 공무직 노동조합은 노조원 수를 늘렸고 세력 확장이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급식 대란"이라는 말로 표현한 급식노동자의 파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와도 맞물려 있다.
학생의 보호자가 직접 급식비를 내던 시기가 끝나고, 비용을 내는 보호자와의 전면적인 대립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시점. 2012년을 시작으로 거의 매해 급식실 조리종사원을 중심으로 한 파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파업은 우리 일상으로 들어왔다.
급식 파업이 시작된 지 1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났다. 파업이 시작되던 초기에 학교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아이들 대체식에 대한 준비도 쉽지 않았다. 파업에 대한 중심을 잡아줄 교육청도 경험이 없어서 지침에 대한 해석을 몇 번이나 수정해서 보내기도 했다. 파업 의사를 직접적으로 묻지는 못하지만, 파업을 대비하라는 모순적인 말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파업으로 이제 학교도 시스템이 잡혀가고 있다. 물론 대체식인 빵과 주스, 쿠키가 인력을 투입해 조리한 급식보다 부실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파업이 나쁜 것일까?
아이들을 볼모로 삼아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일까?
지역별로 시기별로 차이가 있지만, 매년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은 비슷하다. 임금인상, 환경개선.
학교 현장의 여러 사정이 있지만 다수의 급식실 노동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맞다. 소규모는 소규모대로 대규모는 대규모대로 쉽지 않다. 경력이 쌓인 4~50대의 조리종사원 대부분은 근골격계 질환을 수시로 호소한다. 쉽게 말해서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손목, 발목, 허리 한 군데라도 안 아프다고 말하기 어렵다. 2021년 조리종사원의 폐암 관련 연관성이 산재로 인정된 이후 조리종사원을 대상으로 한 폐암 발생률 조사 결과 일반인과 비교하면 2.8배라고 말하기도 한다. (튀기고 굽다 ‘조리흄’ 흡입…급식노동자 최소 60명 ‘폐암 확진’. 한겨레. 2023.3.14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083495.html) 근무 환경이 노동자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소식이 퍼진 탓일까? 아니면 세월이 흐르면서 알려진 것일까? 예전에는 지역 인터넷카페에 조리종사원이 근무 시간대도 좋고 방학에 근무가 없으니 아이를 키우며 할만하다는 이야기가 종종 올라왔었는데 요즘은 찾기 어렵다. 이러한 시대를 반영하듯 최근 조리종사원의 결원이 심각한 수준이다. 신규 채용 공고가 꾸준히 올라오지만, 그 수를 채우기 어렵다.
육체노동의 특성상 손발이 맞아야 일이 수월하고 시간도 줄어드는데 신규노동자의 유입이 없고 그마저 대체 기간제로 투입되고 있는 현실이라 기존 노동자들의 업무강도는 늘어나고 있다. 학교 행정실도 학기 중 급식 대체인력 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이들의 요구가 무리한 것일까?
급여를 올려주고, 조리와 휴게 환경을 개선하라는 요구가 지나친 걸까?
파업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게 나쁜 일 일까?
조리종사원의 경우 장기근속을 하더라도 급여는 연봉제로 인상의 폭에는 한계가 있고 장기근속수당을 가산하더라도 경력자의 급여 수준은 높지 않다. 2023년 기준 경기도교육청 조리종사원의 기본급은 1,918,000원이다. 여기에 각종 수당이 붙으며 개인별 차이는 발생하지만, 그들이 제공하는 노동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다만 같은 학교 내에 근무하는 9급 1호봉 공무원의 기본급이 1,770,800원으로 최저시급을 못 미치고 있어 비교적 높아 보인다. 이는 9급 공무원들의 급여가 지나치게 낮아서 발생한 결과이지 조리종사원의 급여가 높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근무 환경을 살펴보자. 최근 전국적으로 그린스마트, 학교공간혁신을 주장하고 있다. 학교와 감옥이 무슨 차이가 있냐며 공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관리자들에게도 교육환경 개선은 대내외적으로 성과가 되겠지만 노동자의 근무 환경개선은 흔히 말해 티가 나지 않는다. 혜택을 받는 당사자가 내부로 한정되어 있고, 교직원의 환경개선이다보니 학부모나 지역사회의 환영을 받지도 못한다. 해마다 다양하게 실시하는 학교시설개선사업에도 급식실 환경개선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나마 급식실 조리종사원 폐암 관련 조사 결과 때문인지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급식실 환경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코로나 시국 우리는 급식이 일상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깨달았다. 아이들은 친구를 엄마들은 급식을 그리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위생적이고 균형 잡힌 식단 제공은 단순히 끼니를 이상의 돌봄과 보살핌 임을 알았다. 어쩌면 학교가 학생에게 제공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보호장치일지도 모른다.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그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파업하지 않았다면 교육청은 이들의 요구를 듣고자 하는 자세를 가졌을까? 외부에서 알 기회가 있었을까? 학교 근무자들은 알 것이다. 학교 안에서 아무리 소리쳐 봤자 외부는 알 수도 없고 관심 없다.
또한 자라나는 세대가 파업을 경험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삶에서 귀중한 경험이 된다. 우리 세대가 파업에 대한 경험이 없고 미성숙했다면, 자라나는 세대는 노동자로서의 인식을 깨닫고 노동권 침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배우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다만 이를 대하는 학교와 언론의 자세가 지나치게 부정적이라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주장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하게 되지 않을까? 이는 엄연히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인데 말이다.
앞으로의 세대는 조직화한 기업이나 단체의 구성원으로 일하는 형태는 줄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우버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2년 플랫폼종사자 규모와 근무 실태’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가 우리나라에도 80만 명이라고 한다. 노동자와 사측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기존의 노동 구조가 점점 붕괴하면서 본인의 노동권을 지키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점점 개인이 사업자로 변화하는 노동시장에서 노동권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기에 자라나는 세대에게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반복되는 파업으로 학교 안팎의 시선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노동자의 권리 확보 현장을 직접 만날 기회로 생각했으면 한다.
2013년 비엔나 행동선언과 행동강령(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me of Action, 1993)에는 인권의 보편성, 불가분성과 상호의존성에 대해 말한다. 그중에서도 인권의 상호의존성은 나와 공동체, 공동체 간의 권리는 서로 의존적이며 배타적으로는 확보될 수 없는 권리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것이 다른 이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감내하고 서로의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교 구성원과 외부의 모든 국민이 상호의존적 시선으로 파업을 바라볼 때 노동자의 권리는 보호되고 나아가 우리의 권리가 보호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