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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side

소유가 사라진 영화관

소유하고 기억하는 사람들

by 윈즈

얼마 전 콜드플레이 콘서트를 다녀왔다.

나름 페스티벌에도 다녀봤다고 생각했고

꽤 다양한 규모의 공연을 보았지만

단연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심지어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기대까지 되었으니까

비 오는 날 콜드플레이 공연이라니 두고두고 이야기할 만하지 않은가?

날씨 요정이라도 있는지 다행히 비는 그쳤고

당일에 산 기념 티셔츠와 문고글을 소중하게 보관했다.


사람들은 공연장을 찾는다.

밴드 붐이 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더 이상 영화관을 가지는 않는다.

이제 영화는 사라진 것일까?

수많은 OTT의 영화를 생각한다면, 영화관이 더 이상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고 역행한다는 생각이 든다.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모든 사람이 크리에이터가 되어 기록하고 업로드를 한다. 비단 전업 유튜버가 아니라 하더라도 개인 SNS에 순간의 기록을 올린다.

여기에 밴드 공연과 페스티벌은 서로 적합한 매체이다. 대부분의 밴드 공연은 팬들의 촬영이 가능하고 편집과 보정을 통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다. 공연장에 온 관객들은 수많은 선택지 중 그날 공연을 선택했고, 기억한 것을 올린다. 페스티벌 역시 그 공간에 함께했던 사람과 기억을 개인의 취향에 맞춰 편집해서 올릴 수 있다.


누구나 소유함을 전시하고 과시하는 시대이다. 어떻게 소유할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본인이 가능한 것 중 최선 방식으로 순간을 전시한다. 그러나 영화관은 소유도 전시도 불가능한 공간이다. 개인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대가를 지급했지만 페스티벌이나 공연장보다는 엄격하게 공공 소유의 규칙이 적용된다. 영화를 보다가 사진을 찍을 수도, 영상을 찍을 수도, 감탄사를 내뱉거나 호응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특별한 회차의 이벤트성이라면 몰라도 내가 그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도 없고, 기록할 수 없다.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다.

영화티켓은 간단한 정보만 알려주는 전사지 종이로 대체되어 수집과 기록의 의미가 퇴색되었고, 곳곳에 넉넉하게 비치되던 영화 홍보 팜플렛도 점점 사라졌다. 티켓을, 포스터를, 팜플렛을 수집하던 사람들에게 더 이상 기억할 무엇도 남겨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연이나 페스티벌은?


공연에 따라 촬영을 막는 곳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연장에 도착하는 순간 다양한 기념품을 사거나 스스로 만든 기념품을 나누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공연을 보러 가는 순간과 돌아오는 순간을 브이로그 식으로도 남긴다.

개인의 소유가 이루어진다. 소위 밴드붐이라는 것도 소유와 기억이 가능하기에 선택받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어떤 공연을 했는지 찍어서 알려주고, 때로는 나의 안목을 자랑하고, 그날 어떤 감정으로 이 공연을 봤는지 기록하는 등 다양한 형식으로 소유를 전시할 수 있다.


어느새 영화는 휘발성의 장르가 되어버렸다. 무엇을 추억할 것인가? 에 '무엇'을 증명할 것이 사라졌다.

좋은 영활 보아도 기억할 어떤 장치도 남아있지 않다.


영화관이 무리해서 체험 할 수 있는 이벤트를 벌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엔딩크레디트가 수고한 제작인들의 나열을 넘어 포토존이 될 수 있게 한다면?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를 10초라도 띄워놓고 사진으로 기념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선명하게 큰 이미지가 주는 압도감을 배경으로 나와 함께한 사람들을 기억하게 해 준다면 어떨까?

때로는 가볍게 즐기는 흥행작을 보며 다 같이 유쾌하던 순간을 남기거나, 아이와 함께 본 첫 애니메이션을 기억하고, 어렵고 철학적인 영화를 보고 온 날의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영화관이 개인이 가진 순간의 소유를 증명할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부디 영화관이 사라지지 않고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계속 남아있길 바라본다. 그래도 영화만이 주는 기쁨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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