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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side

질문할 용기

by 윈즈

우리 부모님은 70대 중반이다.

6.25를 기점으로 태어나셨고, 베이비 부머 1세대로 많은 형제와 함께 자랐다.

당시의 평범한 집안이 그렇듯 장녀라는 이유로 차남이라는 이유로

학업보다는 경제적 자립을 통한 가정의 보탬이 되는 역할을 맡았다.


부모님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노력하고 알뜰하셨다.

아버지의 외벌이에도 자녀 셋을 다 대학을 보냈으니 말이다.

그 자체로 훌륭한 부모님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른 문제가 생긴다.

자녀 세대인 나에게 부모의 성실함과 노력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자원이 있었던 것이다.


사회·문화적 자본이다.

사회·문화적 자본이란 지식이나 네트워크, 관습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뜻한다


대학에 들어가고 친 첫 중간고사에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빠르게 풀고 시험 답지를 내고 강의실 문을 열고 나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정말 몰랐던 것이었다.

성실한 부모님이 줄 수 있는 학교생활에 대한 조언은 고등학교에서 멈추었으니

선배들과 교류나 족보에 대한 이야기도

성적을 잘 받는 답지 작성 방법도

교수님을 활용하는 방법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대한민국 대부분이 대졸인 상황이라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며칠 전 스레드의 지나 리(Jina Lee)님의 포스팅을 깊은 공감을 느꼈다.

지나 님이 올려주신 포스팅 링크를 바로 걸어본다.

( https://www.threads.com/@jinaleesoc/post/DNMbJXzMbzh?xmt=AQF0PrkvbFenASdTuWJQQZNS8hKiE4GWusLFv6dlNRUDMw )

Jack, A. A. (2019)의 저서 The Privileged Poor 소개해 주셨는데, 그 책은 명문 대학이 사회·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학생들을 어떻게 놓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전형적인 이중적으로 불리한 학생이었다.

선생님과 같은 어른은 그저 모시기에 급급한 존재였다.

그들에게 질문하는 것은 나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했고

선배들과 잘 지내면서 족보를 받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나라는 존재는 나의 힘으로 스스로 개척했을 때

나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이만큼 나이가 들어서 겨우 달라지고 있다.

“다오랩”이라는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질문과 배움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자본을 경험하고 있다.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다정함이 나에게 새로운 사회를 보여준다.


모르는 것은 물어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심을 가지고 모르는 부분을 묻는다면 가르쳐 줄 준비는 되어있다.

이 모든 행동은 상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자라면서 체득한 나의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이가 어른의 시간을 방해하며 안된다는 것,

스스로 깨쳐서 해내지 못하면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아이를 사회 문화적으로 돌봐줄 자본이 없다.

단지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훈육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에너지는 소진된다.

나의 잘못도 부모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사회의 구조가 우리를 새로운 성취의 세계로 진입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못한 것이다.


부모가 되고 나니

이 역할에 대한 노력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에 더 고민이 생긴다.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모습은 다양하고

직업이 다양하고

삶의 방식, 쓰는 언어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다.

좋은 어른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런 세계에서 어떻게 작아지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당당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아이들이 좋은 어른들을 자연스럽게 알아보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주고 받으며 자라는 방법 말이다.

그것이야 말로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이 어떠한 기회 속에 주저함 없이 도전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자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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