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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키워드(과거 vs 현재)

- 일상일기

by 함께

발령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혼자 명함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사랑'과 '열정'이라는 단어로 나를 표현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 그게 나를 표현하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에 '특별함' 또는 '특이한'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나를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이 무작정 예뻤다. 3월에는 학급 아이들에게 웃어주지 말라던 선배 교사들의 조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사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웃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아이들에게 뭐든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 나르는데 월급을 아끼지 않았고, 아이들이랑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주말에도 서울대공원으로 놀러 다녔다. 학급 아이들과 강촌으로 졸업 여행을 가기도 하고, 체육관에서 캠핑을 하기도 했다. 한창 환경미화 심사를 하던 기간에 아이들과 남아 나뭇잎을 하나하나 접어 게시판 뒷면을 울창한 숲으로 만들었는데 게시판 간격이 다른 반과 다르니 다 떼어버리라시던 교감님을 원망하며 펑펑 울기도 했다. 축제 공연에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건 예삿일이 되었다.

그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교사로서의 열정으로 똘똘 뭉쳐서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맘껏 하며 지냈던 나의 모습들을 그때는 스스로 참 대견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그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안 하는 것들을 시도하는 게 어쩌면 특별하고 유니크해 보이겠지만 그런 것들을 시도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특이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비교당하며 "우리는 왜 캠핑 안 해요~" "우리도 주말에 놀러 가요~"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겠지. 나이가 들어 여러 담임쌤들을 만나고, 학급 간의 균형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이제야 그 시절 학년 부장님들이 나 때문에 매년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지 짐작이 된다. 사실 세 번째 학교에서 2월 송별회 날, 2차 술자리에서 다들 얼큰하게 취해있을 때 "나 쌤때문에 여기저기 중재하느라 진짜 힘들었어~" 하고 털어놓으셨던 부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뭘 잘못했지...' 하고 흘려들었다. 이제 와서 너무 자만했던 그때의 나의 모습을 자꾸만 반성하게 된다.



요즘의 나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어는 아마도 '도전', '실패(또는 좌절)', 그리고 '성장'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나는 궁금한 게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다. 예전보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 수많은 호기심들을 해결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도전한다.

도전을 많이 하니까 그만큼 실패도 많이 한다.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데 원하는 MR이 없어서 혼자 연주하며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에 3년 전쯤에 기타를 몇 달간 배웠다. 매일 30분이라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는데 집에 와서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시간이 늦어서 기타를 뚱땅거리기가 어려웠다. (물론 다 핑계다) 둘째를 학원에 픽업해 주고 차에서 기다리는 동안 깜깜한 뒷자리에 앉아 연습해 본 적도 있었지만 실력이 거의 늘지 않았다. 교습해 주시던 선생님께 죄송해서 결국 그만두었다.

글쓰기에 한창 재미가 붙어서 2년여간 써두었던 글을 긁어모아서 에세이로 엮었다. 독립출판을 혼자 해보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인디자인을 공부했고, 덕친을 그림 작가님으로 섭외해서 책 속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도 넣었다. 최애의 말과 글을 통해 느낀 점들을 많이 썼고, 독서를 하며 얻게 된 여러 감상들도 넣었으므로 최애의 소속사와 인용한 책의 출판사에 모두 허가를 받기 위한 메일을 보냈다. 출판사와 계약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알려보고자 텀블벅이라는 펀딩 프로젝트에 먼저 도전하기로 하고, 굿즈도 제작했다. 책의 인쇄나 제본 상태가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서 샘플 인쇄를 다섯 군데 정도 해야 했다. 책 뒷면에 ISBN을 넣고 싶어서 독립출판 작가들을 위해 ISBN을 만들어주는 출판사를 찾아 ISBN을 발급했다. 책은 삽화 때문에 올 컬러로 인쇄해야 했지만 책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해서 인쇄를 할수록 손해 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책을 완성했는데 텀블벅에 보내려고 했던 첫 인쇄본 100권 정도가 마지막에 인쇄용 파일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한 나의 실수로 파본이 되었다. 그 100권가량은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 나눔을 했고 예기치 않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책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밖에도 3년간 팬카페 매니저를 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상처와 좌절,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아무도 관심 없던 인공지능 수학을 개설해서 혼자 수업 준비하고 시험문제를 출제하면서 문제 오류가 났던 경험, 빅데이터와 코딩이 더 잘 알고 싶어 져서 두 번의 방학을 온전히 책상 앞에 앉아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정보 부전공을 이수했지만 중학교로 옮기면서 쓸모 없어진 일 등 안 해도 되는데 굳이 사서 고생을 했던 다양한 실패와 좌절들이 있었다.

장담컨대 나는 그 실패들로 인해 조금씩 자랐다. 생각이 깊고 넓어졌다. 마음은 좀 더 풍요로워졌다. (지금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들로 번아웃이 들이닥친 상태이지만...;;)

아마 앞으로도 나는 계속 도전할 것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내 아이들도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처럼 조금씩 꾸준히 몸과 마음이 성장하길. 20년 후, 함께 나이 들어감에 있어 지나온 시간들을 서로 칭찬해 줄 수 있기를.

#내삶의키워드 #닮고싶은 #멋진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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