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일기
2주 정도 된 것 같다.
마음이 계속 아팠다. 지쳤고, 무거웠다.
마음이 아프니까 몸도 같이 무거워졌다.
번아웃,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력감.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만 있으니 집은 점점 난장판이 되어갔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겨우 돌려 나온 빨래들은 그대로 거실에 널려있었고, 자기 옷만이라도 정리해 달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아이들은 내 얘길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예쁘던 딸들도 다 내 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각성하게 만든 사람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자식들이 아닌, 바로 내 부모님이었다. 지난 주말 부모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다가 (사실 그 식사 자리도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나갔었다.) 다음 달 중순에 아버지의 칠순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됐다. 엄마와 통화할 때 늘 아이들에게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였으므로 나의 현재 상태를 이미 알고 계셨으리라. 가장이라는 역할의 공백으로 인해 서로를 더 돌봐주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 아무리 애써도 바뀌는 것이 없을 거라는 무력감은 우리 셋을 긴 시간 동안 짓눌러왔고 그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음을.
"엄마는 나보고 전화해서 얘기를 좀 해보라는데... 내가 사실 할 얘기도 없고..."
2차로 닭발을 먹으러 갔다가 엄마와 둘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버지께서 마음에 담아두셨던 말씀을 꺼내셨다. 힘들어 보이는 내가 내내 마음에 걸리셨던 엄마께서, 내가 잔뜩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을 같이 들어달라고 아버지께 부탁하셨던 것이었다. 내 마음의 무거움이 고스란히 더 큰 돌덩이가 되어 부모님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 칠순에는 내가 아는 뷔페 중 제일 좋은 곳에서 저녁식사해요."
그날 아버지께 그렇게 말씀드리고 다음날 바로 룸을 예약했는데, 예약도 하기 전에 벌써 제일 친한 친구분들을 초대하셨다는 소식이 엄마를 통해 들려왔다. 엄마는 그냥 조용히 가족끼리 식사하자니까 또 손님을 부른다고 화내셨지만, 아버지는 생일을 앞둔 아이처럼 들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칠순이 생신이긴 하지만)
둘째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픽업을 위해 기다리는 동안 퐁이와 산책을 하다가, 나를 한 번 더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 짙은 꽃향기를 만났다. 라일락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 향이 다시 떠올라서 사진을 멍하니 계속 보게 되었다.
정신이 들었으니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기로 하고, 아파서 2주간 못 나가던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어지러울 만큼 온몸에 힘을 주며 데드리프트를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폭식하듯 허겁지겁 읽었다.
그저 스치는 라일락 향에도 정신이 들고, 저녁 시간 내내 행복해질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불행한 생각만 가득 끌어안고 있었을까. 내가 불행하면 그 기운을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함께 견뎌내야 하건만.
그 밤, 라일락 향기만큼이나 진한 위로도 스쳐갔다. 2023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의 반가운 DM이었다. Y의 담임이기도 했던 그와 Y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Y의 마음과 비슷해져 버린 요즘 나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내게 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면 그에게 마음의 짐을 옮겨주게 될까 봐 자꾸만 꺼려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Y도 내내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마음이 더 아렸다는 이야기.
"그러셨군요.. 늘상 일상적이고 때론 강해 보이는 것과 달리 우린 항상 외롭고 나약하고 상처받는 존재들인 것 같아요. 그리고 늘 평온할 순 없지만 평온함을 바라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다는 것만큼 의지되는 건 없더군요..
관계와 결속, 그리고 혼자 버려지지 않았다는 그 믿음이 삶을 지속해 내는 힘이지 않나 싶습니다.
울 샘도 늘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되는 존재임을.. 함께 삶 속에서 한 걸음씩 딛고 나갈 동료이자 위로가 될 수 있단 점 기억하며. 함께 가요."
가까이 있지 않지만 믿음으로 함께 걸을 동료가 있고, 나의 평온함을 바라는 인연이 있다는 말이 더없이 위로가 되었다.
이깟 번아웃, 무기력? 까짓 거 이겨내자. 내 의지로 꿋꿋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