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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게 겁이 나

- 독서일기 & 덕질일기

by 함께

루시가 생각하는 가장 구제불능의 인간은 어린 왕자가 여행 중 만난 술 마시는 아저씨이다. 그 아저씨는 하루 종일 술을 마신다. 괴롭기 때문이다. “왜 괴로운가요?” 그렇게 묻는 어린 왕자에게 아저씨는 술을 마신다는 게 괴롭다는 뒤통수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이유를 댄다. 그 아저씨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루시는 생각한다. 겁이 난다는 사실이 겁이 나고 그 겁이 또 겁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루시는 여전히 겁이 나. 그러나 겁이 난다는 사실은 하나도 겁 안 나. 루시는 지금 아주 용감하게 겁이 나. 그 마음으로 오늘 노래해 볼게.
- 요조,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코로나가 한창 지나갈 무렵이었던 2021년 겨울, 우여곡절과 근심 걱정 끝에 2년 만에 최애의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고, 함성은 불가능했다. 함성 대신 박수로 대신해야 했던 그 겨울의 콘서트에서 최애는 어떤 생각을 하며 3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을까. 마지막 날엔 결국 목에 담이 걸려서 목을 반쯤 기울인 채 콘서트를 이어나가야 했던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2022년 드디어 함성이 가능해졌던 5월의 팬미팅에서 그제야 최애는 지난 단콘에서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2022 팬미팅 Let Us Meet 토크 필사

그날 알게 된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고 용감하게 겁이 난다는 말의 의미를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다. 두렵지만,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니까. 그 마음은 두렵지 않다는 것. 더 높은 점프를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 같은 것.


몇 달 전부터 무릎이 아파진 이후로 운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드니 식이요법만으로는 체중이 줄지 않았고, 몸이 아프니 다이어트에 대한 의욕도 상실. 덕분에 체중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 주사 치료로 조금씩 나아졌던 무릎 통증은 체중이 증가하니 다시 도졌다. '통증-운동부족-의욕상실-체중증가-통증'의 악순환이었다.

그런데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술 마시는 아저씨의 모습이 꼭 나 같았다. 술 마시는 게 괴롭고, 괴로워서 술을 마신다니! 그럼 술 마시는 걸 멈추면 되는 것을!


체중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서부족-글쓰기 소재고갈-남들과 비교-의욕상실-노력부족'의 악순환 또한 술 마시는 아저씨랑 똑같았던 것. 이런...

남들과 비교하며 나의 부족함이 속속들이 다 보이면 어쩌나 하고 겁을 먹었던 게 오히려 나를 자꾸만 더 움츠러들게 했다.


겁이 난다는 사실이 겁이 나고
그 겁이 또 겁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겁이 난다는 사실이 겁이 나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고 있었던 내가 좀 더 용감해질 수 있도록 해준 이 말을, 겁이 날 때마다 자꾸만 되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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