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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였던 나에게

- 일상일기 & 덕질일기

by 함께

이상하리만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드문드문 떠오르는 특정 몇 가지 사건을 빼고는 거의 남아있질 않다.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을 뻔했던 것, 집주인 네 딸과 놀아주며 그 아이의 종이 인형까지 모두 잘라주었던 것, 방 안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납땜 부업을 하며 늘 기침하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던 것, 3학년 때 서울에서 안산으로 이사 오며 친한 친구들과 헤어졌던 것, 책을 좋아했지만 가난했던 집안 형편에 책을 사달라고 하기가 어려워서 옆집 아기를 돌봐주고 셜록 홈스 전집을 빌려다 읽었던 것,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챙겨야 했고 매일 문구점 앞에서 오락기에 매달려 있던 동생을 찾으러 갔던 것...

그나마 남아있는 기억들도 좋았던 것들보다는 힘들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수많은 사건들을 무의식 중에 다 지워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기억들을 많이 남겨주고 싶었다. 여행을 다녔던 기억이 거의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듯 둘째가 세 살이 되었던 해부터 캠핑을 다녔고, 방학을 이용해서 제주도 2주 살기도 도전했다. 부산, 경주, 남해, 춘천, 군산, 진해 등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내 꿈은 '선생님'이었다. 철없던 사춘기 중학교 시절 연기학원에 시험 보러 갔던 사건을 제외하면 꾸준히 내 꿈은 변하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가난했던 시절을 겪으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방법은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이라고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어린 나이에 걸맞은 어린이 같지 않았던 나에게 부모님은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고 종종 말씀하신다.



훌쩍 커버린 내 키만큼

다 자라지 못한 나를 알아
웅크린 그 아인
여전히 내 안에 있어

일찍 커버린 너의 맘은
좀처럼 닿을 곳이 없었지
이젠 말해줄래 들어줄게
여기 있어 난

처음엔 어렵고 낯설기도 할 거야
미뤄둔 말을 꺼낸다는 건
너만 아는 아픔들을
조용히 안아준다는 건

내게 기대 맘껏 울어도 돼
언제나 혼자였던 밤에
누군가 필요했던
불안하고 외로웠던 날에

말해줄게 들려줄게 이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괜찮아 너의 아픔은
너의 탓이 아냐

때론 넘어져 아프기도 할 거야
누구라도 날 잡아줬으면
솔직하기가 어려워
너조차 너를 몰랐던 날

내게 기대 맘껏 울어도 돼
언제나 혼자였던 밤에
누군가 필요했던
불안하고 외로웠던 날에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어
왜 내게만 어려운 걸까'
괜찮아 너의 아픔은
너의 탓이 아냐

말하지 못한
꺼내지도 못한
너의 아픔들이 다
그게 나라서 미안해

같이 웃고 같이 울자 이젠
더는 널 혼자 두지 않아
네가 견뎌온 밤이
오늘의 날 지켜준 것처럼

언제라도 네 곁에 있을게
그래 우리 다시 만나면
말할게 고마웠다고
나의 어제에게​


- 정승환, '너의 내일로부터'



이 노래를 듣고, 어린 나에게 "괜찮아, 너의 아픔은 너의 탓이 아냐" 하고 도닥여주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아마 나의 최애도 어렸을 적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가사로 적으며 나 같은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했겠지.

어린 나이에 맏이로서의 책임감을 등에 잔뜩 지고 자라왔던 나에게 이젠 얘기해 주고 싶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정말 잘해왔다고 말이다.

#어린이였던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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