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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람 Aug 16. 2024

버스에서 졸다가 깨는 이유?

근방추, 이산화탄소, 신장반사, 이불킥, 알파운동신경, 감마운동신경

일상에서 버스를 타고 갈 때면 어김없이 눈이 스르륵 감기며 졸음이 밀려옵니다. 버스 안은 저만의 락 페스티벌 공연장이 되어 음악이 없는데도 혼자 헤드뱅잉을 하고 있습니다. 왜 버스만 타면 졸릴까요? 전날 벼락치기로 공부하다가 1시간밖에 못 잤다면 충분히 졸릴 만도 하지만, 평소엔 8시간을 잤는데도 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버스에 탄 사람들이 내뱉는 숨에 의해 버스 안의 이산화탄소량이 늘어납니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2000ppm을 넘어가면 집중력 감소와 두통과 심하면 구토 증세까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네 사람이 함께 승용차를 타고 멀리 이동할 때도 어지럽거나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혼자 겨울철에 히터를 틀고 10분만 차를 운전해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0ppm을 훌쩍 넘깁니다.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강의실에서 수업 중에 조는 학생이 있는 것도 이유겠죠(물론 결정적인 이유는 제 수업이 지루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모든 공간은 환기를 자주 시켜주어야 합니다. 차와 같이 비교적 좁은 공간은 사람 수가 적더라도 30분마다 1분씩 환기해야 하며, 버스나 강의실과 같은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있으면 50분마다 10분씩은 환기해야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졸다가 옆에서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버스가 멈추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깬 적 없었나요? 나도 모르게 졸다가 깨면, 놀란 티를 안 내기 위해 그 자세 그대로 있었던 적 없었나요? 그리고 주위를 살핀 후 침 한번 닦고 안 졸은 척하다가 또 졸고 또 깨고 이걸 반복하죠. 왜 이렇게 우리는 외부 자극 없이도 잠이 깰까요?      

좋아~ 자연스러웠어!

그 이유는 불안정한 외부 환경에 대해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근육이 항상 긴장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버스에서 졸린다고 내 몸이 어디로 가든 상관없이 자게 되면 아주 난감해지겠죠? 아무래도 집보다는 불편한 버스 좌석에서 우리 몸을 완벽하게 이완할 수 없으므로 긴장하고 있는 근육에 의해 잠을 깨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몸의 근육에는 근방추(muscle spindle)라는 근육의 길이를 감지하는 구조물이 있습니다. 근방추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작용시킬 수 없고, 근육의 과도한 신장을 감지하면 반사적으로 근육을 수축하게 만듭니다.

    

버스에서 졸려서 머리가 앞으로 또는 옆으로 고개가 툭 떨어질 때, 머리가 떨어진 방향의 반대쪽에 있는 근육이 순간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때 늘어난 근육의 근방추에 있는 핵 주머니 섬유(nuclear bag fiber)도 늘어나게 되고, 이를 Ⅰa 감각신경이 감지합니다. 이 신호는 척수를 타고 흥분성 사이세포(interneuron)를 지나 α(알파) 운동신경을 흥분시켜 늘어난 근육을 다시 수축합니다. 이처럼 순간적으로 늘어난 근육의 근방추가 작동되어서 원래 길이로 되돌아오라는 신호가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하죠. 이어서 근육의 수축과 함께 느슨해진 근방추는 다시 긴장을 감지하기 위해 동적인 γ(감마) 운동신경을 흥분시켜 근방추의 원래 길이로 돌아오게 됩니다.     

편의점이라는 근육에, 알바라는 근육섬유가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직원이라는 근방추가 작용하네요.
알바가 정신 차리니, 이젠 직원이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사장이라는 감마운동신경이 작용하네요.
알바도, 직원도, 사장도 모두 열심히 일해서 편의점이란 근육이 제대로 작용하겠군요!
다리가 바닥에서 약간 떨어질 정도 높이의 의자에 걸터앉아서 무릎뼈 바로 밑을 망치로 툭 쳤을 때 다리가 갑자기 뻗어지는 것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신장 반사(stretch reflex)라고 하는데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무릎뼈 앞을 지나는 넙다리네갈래근을 망치로 툭 치는 행동이 순간적인 신장을 만들어서 이를 원래 길이로 되돌리고자 하는 근방추의 반응으로 넙다리네갈래근이 순간적으로 수축해서 다리가 앞으로 뻗어지는 것입니다.     

  

버스에서 졸 때도 그렇지만, 집에서 편하게 자는 동안에도 깜짝 놀라며 깨곤 합니다. 몸이 너무 피로하면 충분한 렘(rapid eye movement; REM) 수면 단계로 넘어가지 못할 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몸이 피로하지 않아도 깜짝 깰 때도 있죠? 이러한 현상은 나의 수면 자세를 확인해봐야 합니다. 버스에서 졸다가 깨는 반응은 근육의 순간적인 신장을 감지해서 원래 길이로 돌아오게 만드는 ‘동적인 근방추의 반응’이라고 하면, 집에서 편하게 자다가 깨는 반응은 수면 자세가 근육의 장시간 신장을 감지해서 원래 길이로 돌아오게 만드는 ‘정적인 근방추 반응’이라고 합니다.      


근육이 장시간 지속해서 늘어났을 때 근방추에 있는 핵 사슬 섬유(nuclear chain fiber)도 늘어나게 되고, 이를 Ⅱ 감각신경이 감지합니다. 이 신호는 척수를 타고 흥분성 사이세포(interneuron)를 지나 α(알파) 운동신경을 흥분시켜 늘어난 근육을 다시 수축합니다. 이처럼 장시간 늘어난 근육의 근방추를 작동시켜서 원래 길이로 수축하라는 신호에 여러분의 잠이 깨죠. 근육의 수축과 함께 느슨해진 근방추는 다시 긴장을 감지하기 위해 정적인 γ(감마) 운동신경을 흥분시켜 근방추의 원래 길이로 돌아오게 됩니다. 자주 잠이 깨는 분들은 나의 수면 자세가 관절을 너무 굽혀서 근육을 늘리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불킥? 키가 크려나?

그런데 어떤 분은 버스에서 푹 잔다는 분도 계시겠죠? 몇 번 졸다가 일어남을 반복하다가 옆 사람에게 계속 죄송하다고 얘기하다가 어느 순간 포기해 버리고 자버리는 분도 계실 겁니다. 앞선 근방추의 과정은 모두 척수 내에서 이루어지는 반사적인 반응입니다. 나의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반응으로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푹 주무시는 분들은 의식적으로 척수 이상의 대뇌피질 영역에서 ‘나는 지금 너무 피곤하니 그냥 잘래’라는 의지를 척수로 보내게 되면 척수의 무의식적인 반응을 무시한 채 계속 잘 수 있게 됩니다. 그래도 옆 사람에게 기대거나 침까지 흘리면 안 되니 근방추를 활용해서 여러분의 흐트러지는 애티튜드를 경계해야겠죠?(제 수업 중에도 마찬가지....)     

< 이 글을 읽고 다음을 생각해 보세요 >


1. 동적인 상황정적인 상황에서 근방추에게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은 각각 무엇인가요?

2. 근방추가 작용한 후에, 근방추의 원래 길이로 돌아가게 하는 신경은 무엇인가요?

3. 아직도 제 수업이 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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