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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lar Dec 04. 2023

10년을 일했는데..

나를 채우는 일


오랜 커리어를 쌓았지만

형체 없고 덧없음에 현타 오는 당신에게

채우자, 회사 말고 나를.


나를 채워야, 회사도 메꿀 수 있다.

그리고 고여있지 말고, 끊임없이 흐르길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바란다.


20대 어린 나이에 공채로 시작해

회사일은 남보다 열심히 했음을 자부했다.

새벽까지 철야는 기본이었고 주말근무도

마다 하지 않았다.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 생각했던 때였기 때문에

어느 순간 내가 가진 걸 꺼내 쓰고

태우듯 살아오다, 10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물론 이미, 사회생활 시작과 함께 세상에 나왔지만,

10년이나 다닌 곳은 어쩌면, 가장 오래 다닌 초등학교보다 길게 다닌 것 아닌가?


그런 정들고, 익숙했던 곳을 떠나,

새로운 직장에 간다는 것은

어떤 모험보다 겁이 났다.

내 능력이 다른 곳에서도

통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그렇게 매일 야근하며,

쏟아부은 시간에서 내가 배운 게 무엇인지,

내가 아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형체도 없이 흐물거리는 시커먼

시간들처럼 보였다.  

그저 회사를 오래 다닌다고

내가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한 때는 오만하기도 했다.

매일 몸 사리느라 자기 의견하나

제대로 말 못 하는 선배들이 한심했고,

아무리 교정해 줘도 일을 제대로 해오지

못하는 동료들이 답답하기도 했다.

선배인데, 나보다 모르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보니 알았다.

나는 그 회사의 전문가였지,

내 직무의 전문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내가 쌓아온 데이터와 전공은

이제 너무 옛것이 되었고,

그것만으로 내가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마치 오래되어 썩을 대로 썩은 나무 노를 저어

망망대해를 건너겠다는 심보였다.


다시 겸손해짐을 배웠다.

나는 당신보다 모를 수 있다.

나보다 어린아이가 나보다 너무 잘할 때,

알 수 없는 질투심이 피어오를 때마다

생각했다. 이 아이에게도 배우자,

이 아이의 능력을 인정하고, 스승으로 생각하자.


선배들을 이해했다.

나보다 오랜 시간을 쌓아도 당신도 모를 수 있음을

그래도 더 나아가지 않고 머무름을 선택한 것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이해에 도달했을 뿐.


이제, 나는 형체 없는 나의 경험들의 모양을

내기 위해 스스로 채워가는 중이다.

어느 곳에 가든 흉내 낼 수 없는 나의 전문성으로,

홀로 서는 것은 회사가 해주는 것이 아님을 배웠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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