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못한 여행

보고 싶은 나의 사람아

by 안현아


내 하나뿐인 우주는 빅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잠들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죽어서도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당신의 빈자리는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대체 누가 당신의 자리를 채울 수 있지? 다른 사람으로 메울 수 없는 텅 빈 공간이 커다랗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일한 사람의 부재를 억지로 채워봤자 공허함만 더해질 뿐이었다. 혼자 감내해야 할 부분이 많았고 오랜 시간을 힘들어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예상 가능한 범주의 사고에 가까웠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도 모르기 위해 대답을 잘라버린 것도 전부 다 내가 선택한 거였다. 누가 억지로 하라고 떠밀어 버렸다면 그 사람을 원망했겠지. 원망할 대상이 ‘나’라는 건 후회를 늘리는 일이었다.

나를 떠난 뒤에도 당신은 꿈에 찾아오지 않았다. 한 번만 보고 싶다고 목청껏 울어 봐도 오지 않는 사람을 살아 있는 사람이 무슨 수로 불러내겠는가. 아무리 붙어 봐도 내가 지는 싸움이었다. 승산이 없는 싸움에서 6년을 보내자 당신이 나를 찾아왔다.




2017. 03. 06
꿈을 꿨다. 엄마가 어디를 놀러 가서 사진을 막 찍어왔어. 분재를 잔뜩 찍고 울창한 나무도 찍고 엄마를 찍은 사진도 있었어. ‘엄마가 사진을 잘 찍는다’고 아빠가 막 자랑을 했어. 전체적인 사진 색감이 약간 어두워 보이거나 안개 낀 것처럼 회색빛 같았는데 오히려 그게 느낌이 더 나서 좋았어. 풍경을 찍은 사진은 많았지만 엄마를 찍은 사진은 딱 두 장 나오더라. 필름 카메라로 찍어서 필름이 모자랐는지 하나는 사진 자체가 아예 망해서 버려야 할 지경이었고 하나만 간신히 건졌는데 옆모습이었어.




내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좋았다. 당신과 꿈에서나마 이렇게 만났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옆모습뿐이라고 해도 당신이었으니까. 그 사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내 꿈에서만 있으니까 이것 또한 유일한 것이었다. 아마 수목원을 가서 찍은 사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젠가 내가 갔던 수목원의 풍경과 당신이 겹쳐지며 그 려진 풍경일 거라 짐작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고 나는 멋진 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사진을 찍는 당신이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질구레한 인생 말고, 돈 때문에 숨이 막혀 하루하루가 생존이었던 시절 말고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시간을 꿈에서나마 주고 싶었다.

그 후에 마지막으로 꾼 꿈은 같은 해 11월이었다. 8개월이 지나고 다시 나를 방문한 당신과 즐거운 한때를 같이 보냈다. 3월의 꿈이 여행을 떠난 당신을 사진이란 매개체로 본 거였다면 이번에는 나와 당신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2017. 11. 12
꿈꿨다. 엄마 꿈. 엄마랑 같이 지하철 타고 여기저기 다니고 비이상적인 역을 지나가기도 했다. 코앞에 바다가 있는 역도 있었고 어떤 역은 지하철 입구를 그대로 나가면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공원은 꽃들이 가득했다. 여기가 죽은 사람들 묻은 곳이라고 엄마가 말해줬는데 지금 다시 떠올리려고 하니 헷갈린다. 엄마랑 나란히 앉고 엄마랑 나란히 지하철 여행을 하고 엄마랑 대화를 하는 시간이 되게 오묘했고 신기했다. 본 적 없는, 지금까지 만난 적 없는 지하철 역 속에서 엄마와 함께 했다는 것이 좋았다. 꿈속 시점은 내가 한창 폭탄을 터트리며 하루하루 정신없었을 때였다. 그래서 엄마가 쓰러져가는 딸을 데리고 기분 환기 시킬 겸 같이 다녔나 보다. 정말 좋았다.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서.




그 후로 당신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한 꿈에서 만났을 수도 있겠지만 내 기억은 2017년 두 번의 만남이 처음이자 끝이었다. 6년 주기로 찾아온다고 하면 올해가 가기 전에 와야 하는데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울 마음은 없다. 그때의 나는 이미 무너진 채로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어서 당신을 동아줄처럼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발 한 번만 도와 달라고 뻔뻔하게 요구했을 수도 있다. 당신에게 나는 영원히 아이일 테니까. 치사한 마음도 받아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당신은 응답했고 나는 그날의 풍경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도저히 이 세상의 색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짙은 검붉은 하늘을 기억한다. 멸망에 다다르면 이런 풍경이겠거니 할 정도로 하늘은 불타오르고 있었고 동시에 검게 물들여 자신의 색을 집어삼켰다. 당신의 몸을 붉게 태우고 떠나보냈을 땐 구름 몇 점 있는 청량한 하늘이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기억도 추억도 바래지지만 내 몸에 새겨진 흔적까지 지울 순 없다. 어느 날 나는 당신에게 선물로 찾아왔고 나는 당신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어 긴 시간 동안 후회 속에서 살아왔다.

이제 그만해야지. 당신이 보고 싶어 우는 날이 찾아와도 더 이상 후회하지 않고 당신이 오길 기다려야지. 오지 않는다면 내가 찾아가면 된다. 당신은 영원히 잠들어 있고 그곳에서 나를 기다릴 테니까.






글쓴이: 현아 (https://instagram.com/withst4nd)

편집자: 민지

2023. 0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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