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기록』 전시회를 다녀와서
홍대입구역 카페 <크림별>에서 열린 사진 전시회에 갔다. ‘청’ 사진작가의 작품은 너로 처음 알게 되었다. 유독 비슷한 부분이 많아 취향이 겹치는 일도 자주 있는데 청 작가의 사진이 딱 그랬다. 우연히 본 바다 사진은 어지러웠던 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번잡한 생각을 뒤로 미루게 하는 사진 한 장의 힘은 제 자리를 꼿꼿하게 지키는 나무처럼 묵직하고 든든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카페 앞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더 늦게 오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기며 기다리는데 흐린 하늘이 제 모습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비를 퍼부었다. 우산이 없어서 당황하고 있을 때 너는 우산을 사 오겠다며 자리를 떴고 나는 늘어진 줄에 따라 서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서서 기다려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곧 보게 될 바다 때문일까? 빨리 그곳에 들어가 비로 적신 몸을 바다에 던지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편의점에서 샀을 우산을 들고 돌아왔다. 전시회 포스터도 찍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 차례가 되었다.
눈앞에 바다가, 일렁이는 파도가 카페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항상 바다를 동경하던 내가 바다에 가지 못한 대신 이곳에 왔다. 더 깊게, 더 어둡게 색을 칠한 바다와 윤슬을 가득 머금은 바다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카페 안은 작고 사람은 가득하고 너와 떨어지지 않게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힘들거나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나는 바다를 좋아하고 그가 찍은 바다를 동경했다.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는 내가 닮을 수 없는 색감과 찰나를 멋지게 붙잡은 그에게 질투까지 날 정도였다. 순간을 위해 들이는 시간은 순간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몇 번이고 눌렀을 셔터 소리가 짧게, 여러 번 들려왔다.
창문 밖 바람으로 흩날리는 커튼이 마치 물결처럼 느껴졌다.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빠지고 나는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방명록을 짧게 남겼다. 계속 사고 싶었던 스티커도 고르고 오른쪽 모퉁이로 몸을 돌렸다. 작은 사이즈의 바다 사진으로 가득 채워진 벽은 거대한 캔버스 같았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찍혔는지 모르는 바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 몸처럼 길고 넓게 전달했다.
어떤 바다에 들어가고 싶은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일몰로 빛이 잠긴 바다, 노을에 반짝이는 바다, 해가 뜨는 바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얘지는 바다, 어느 날에는 에메랄드빛을 머금은 채 빛나고 다른 날에는 짙은 파란색을 품은 바다와 거대한 파도가 멀리 보인다. 저 웨이브를 따라 어디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바다에 들어가고 싶은 건 돌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물속으로부터 왔으니 물로 돌아가는 게 맞지. 어느 날의 내가 저수지를 찾은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바다가 멀리 있어서, 가고 싶은데 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가까이 있는 물에라도 들어가 사라지고 싶었을지도 몰라.
이젠 저수지가 아닌 바다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바다를 보러 갔다. 망설일 시간조차 아까워서 줄곧 그곳을 방문했다. 혼자서 물결치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하루는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나를 안아줄 누군가 필요했어. 나는 그게 바다였으면 한 거야.
나는 흘러간다. 나는 찰나에 존재하고 바다는 영원히 남는다. 순환하는 흐름 속에서 바다는 지구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존재하겠지. 그때가 오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겠지만 너와 본 바다는 영원할 테니까.
조금은 정신없고 복작복작한 바닷속에서 고이 간직하고 싶은 책갈피와 포스터, 언젠가 건넬 엽서도 샀다. 이제 나는 바다가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다는 늘 같은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부서지고 있다는 걸 안다. 파도는 또 오겠지만 이것 또한 멈출 거란 걸 안다.
나를 맞이할 바다를, 오늘 만난 너와 또 가야지. 가지 못한 길도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일도 전하고 싶은 한 마디도 바다에 가면 다 털어낼 수 있을 테니까. 여름날 쏟아지던 햇빛에 맑게 웃는 너를 봤으니 다음에는 겨울 바다를 보러 가자.
바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영원으로 남아.
청(@blaushut), 『청색기록』 「모든 시간이 흐르고 나는 영원으로 남아」 인용 (2023)
글쓴이: 현아 (https://instagram.com/withst4nd)
편집자: 민지
2023. 0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