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끝내주는 인생』 사인회를 다녀와서
이슬아 작가의 글을 처음 본 건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였다. 유독 긴 문장의 제목이 눈에 밟혔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좋은 글이 가득했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와닿을 수 있나. 잊어버리고 살았던 걸 다시 알려주는 책이었다. 너무 좋아서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한 번 본 책은 다시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유달리 눈에 밟혔다.
얇은 책에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 놓고 틈날 때마다 읽어보던 때에 마침 일이 있어 들른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그의 신간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토요일, 이슬아 작가 『끝내주는 인생』 친필 사인회? 이건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작가로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스타 작가,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사인회는 처음이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곧장 『끝내주는 인생』을 사고 사인회를 기다렸다.
오후 2시 사인회인데 9시 반부터 입장표를 준다는 포스터 안내문을 보고 알람을 맞췄지만 역시 직장인에게 토요일 이른 기상은 힘든 일이었다. 결국 예상시간보다 늦게 교보문고에 도착해 번호표를 받았는데 3번이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부지런하지 않다고 되새기며 편안한 마음으로 근처 분식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서점으로 돌아왔다.
갖고 온 시집을 펼친 채 필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사인회 시간이 가까워졌다. 두근대는 가슴을 껴안고 한 손에 『끝내주는 인생』을, 다른 손엔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꼭 쥔 채 내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서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통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의 책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알려주고 싶었고 현재 나를 짓누르는 글쓰기의 무게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다.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지, 글쓰기가 힘들 때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질문 순서를 짜기에 바빴다. 그러던 찰나, 3번 차례가 되었다. 『끝내주는 인생』에 사인을 받으면서 그에게 가장 먼저 건넨 말은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었다.
“저도 작가인데 글을 안 쓴 지 오래됐어요. 어떻게 해야 글을 다시 쓸 수 있을까요? 작가님은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내 고민을 듣고 있던 그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글 쓰는 건 힘든 거라고, 연재하는 곳이 있는지, 그리고 『일간 이슬아』를 참고하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고민하던 내게 이슬아 작가와의 3분짜리 사인회는 멈춰 서 고여 있던 나를 다시 흘러가게 만들었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던 내 손이 드디어 자판 하나하나를 누를 수 있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입장에서 일간 연재는 도저히 힘들 거 같아 주간 연재로 방향을 잡았고 이름 정하는 감각이 부족해 평범하게 『주간 안현아』로 이름을 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주간 안현아』로 연재를 해도 되겠냐는 다이렉트 메시지 보냈는데 흔쾌히 상관없다는 답변을 받아 『주간 안현아』가 탄생했다.
나는 멈춰 서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 시간이 마냥 헛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전진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드라마와 영화를 잔뜩 보고 시, 소설, 과학, 인문 등 다양한 장르의 책도 보고 필사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으니까. 그렇게 겹겹이 쌓인 문장들이 나를 세상 위에 지탱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긴 시간 동안 축적된 경험들과 한번의 계기로 인해 나를 다시 한 번 종이 앞에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쭉 텅 빈 종이 앞에 서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잘 풀리는 날도, 한 글자도 써지지 않는 날도 반복되겠지. 그럴 때마다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한 번의 만남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그날의 나를.
거의 3~4년 정도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방황하던 내게 이슬아 작가와의 만남은 지각변동과도 같았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느낌, 내 앞을 막고 있던 벽을 뛰어넘어 내가 바라던 너머까지 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 아무리 멈춰서도 결국 나는 ‘쓰는 사람’ 임을 알게 해 준 토요일 오후는 지금의 나를 만들고 더 멀리 발돋움할 수 있게 해 준다. 짧은 순간이 건네준 용기를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긴다.
글쓴이: 현아 (https://instagram.com/withst4nd)
편집자: 민지
2023. 09.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