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고 싶어서 여길 떠났어

우리가 서로 안아줄 수 있다면

by 안현아


종종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야 누구나 있지만 용인할 수 없는 범위에 다다르면 그때부터 생지옥이 펼쳐진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실을 때까지 내 생각은 하나로 귀결된다.

‘도망치고 싶다.’

‘그만두고 싶다.’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

‘일주일만 쉬고 싶다.’

그렇게 생각의 꼬리를 자르지 못할 때 반대편에서 돈 문제가 나를 보며 징그럽게 웃고 있다. 그래, 내가 저것 때문에 다니고 있지. 얼마를 벌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당장 그만둔다면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한 달 안으로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을까? 도저히 이성적인 사고가 되지 않는다. 시원하게 그만두면 되는데 그걸 못해서 또 시간만 끌고 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직장을 다니는 게 맞나? 아무리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결국 내가 포기하는 것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포기하고 계속 다니거나, 포기하고 직장을 뛰쳐나오거나.

처음엔 참았다. 딱 한 달만 버티자고 나를 다독였다. 금방 지나갈 거라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졌고 한 달을 참을 거라 다짐했던 것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채 결국 더러운 생지옥에서 뛰쳐나왔다.

나는 나를 살리고 싶었다. 고작 그런 사람들 때문에 죽고 싶지 않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거지만 나는 목숨 세 개짜리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었다. 한 번 떨어지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 기회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지옥에서 해방되니 이제야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직장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무사히 퇴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부산과 울산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다시 직장을 다녀야 할 즈음에 우연히 들어간 곳은 한 달쯤 다녔을까. 조용한 내 직감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 더 있으면 안 돼.’

평소에 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가 유달리 직장을 다니면서 더 예민해지는 건 이때까지 쌓인 자료들 때문일 것이다. 가야 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떠나지 못하고 시간만 질질 끌어 나를 한계에 몰아붙였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만할 때를 안다.

몇 번이고 직장에서 상처받고 힘든 날들을 보내며 지내온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만둬도 된다고, 한계 이상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면서까지 그곳에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이다. 각자의 사정을 전부 알지 못해 오지랖 넓은 말은 잘하지 않지만, 한 번은 꼭 전해주고 싶었다. 가족 때문에, 돈 때문에, 사회 때문에 나를 뒤로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힘들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나와도 된다. 당신의 잠재력은 무한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에 계속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떠나간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내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곳에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뉴스에 나오지 않은 사연은 얼마나 많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다시 돌아오라고 하는 말도 쉽게 뱉을 수 없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어서 이 바람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손을 잡는 일은 이다지도 어렵다. 옆에 있다고 다 잡을 수 없고 내 앞에 있지 않아 맞닿을 수 없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기도한다. 당신이 직장 때문에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을 모르는 사람과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거머리들 때문에 상처받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당신을 우선으로 여기길 바란다.

도망이든 도피든 다 상관없다. 어제의 당신을 오늘 다시 볼 수 있다면, 당신이 살아서 나와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다면 그깟 단어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테니까.





글쓴이: 현아 (https://instagram.com/withst4nd)

편집자: 민지

2023.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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