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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아 Oct 09. 2023

잘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01. 고해성사


 잘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터놓고 말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령껏 당신을 안심시키고 잘 사는 척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께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거짓말이 쌓이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불려 제 발목을 붙잡을 테니까요.

 지난한 하루를 보내고 안개마저 잠든 새벽이 오면 당신 생각이 많이 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서 죽는 걸까요? 하고 싶은 말이 쌓여갑니다. 물먹은 솜처럼 무게를 늘려가는 말들의 종착지를 아직 알지 못합니다. 목구멍을 타고 넘지 못한 말은 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음과 모음이 이어지지 않은 채 단절된 모습은 마치 저와 당신 사이처럼 비참합니다.

 감히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당신조차 들을 수 없는 저의 바람은 별거 아닌 것처럼 지나가고 말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천장이 낮은 상자 속에 곱게 무릎을 꿇은 채 관대한 용서를 바라고 있어요. 잃어버린 사람을 찾으러 저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찾지 못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잘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것, 날카로운 목소리에 등이 움츠리던 당신을 외면한 것, 낯선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당신을 돌아보지 않은 것.

 저의 죄가 쌓여갑니다. 당신이 없는 집에서 용서가 아닌 참회를 하고 당신은 저를 찾지 못하고 제 목에 매달린 추錘가 영원한 굴레의 속박이 되어 저는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아무것도 전하지 못해 저는 잘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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