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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아 Oct 29. 2023

너무나 많은 계절을 건너온 사람은

『자동 피아노』를 읽고


 ‘나’는 중첩되는 모순 속에 갇혀 있다. 완전히 눈이 멀만큼 밝고 먼눈으로 보는 것처럼 어두운 곳 1)에 혼자 남아 있는 건 ‘누구’가 아닌 ‘무엇’이다.

 죽음에 대해 예찬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음과 멀어지려고 한다. 바로 자신의 옆에서, 위에서, 아래에서 거대해지는 죽음의 그림자로 걸어간다. 그럼에도 가까워지지 않고 다가간 만큼 멀어진다. ‘나’는 고독과 죽음과 모순과 생존과 무기력함을 동시에 부여받으며 지옥 속에 너무나 많은 절망과 ‘나’ 2)는 함께 추락한다.

 『자동 피아노』는 외면하고 싶은 어둠에 깊게 침투한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말들이나 감정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아직 그곳에 남은 나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는 날이 잔뜩 선 움츠린 고백의 나열들. 나는 그곳에 잠겨 있다. 나를 무수히 쪼개고 있는 고통에,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절망에, 가장 사랑한 사람들에게 받은 배신 같은 것을 무대 위에 서서 직면한다.

『자동 피아노』에서 ‘나‘가 겪은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관념의 형상화일 수도 있고 오래 머문 곳을 아무리 설명해도 타인이 온전히 닿을 수 없어서 의도적으로 배제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소설을 보면서 지레짐작하고 내가 겪었던 고통과 죽음을 대입시킨다.

 불행과 고통의 차이를 ‘불행은 해석의 대상이지만, 불행이 불러일으키는 고통은 해석되지 않는다.’ 고3) ‘나’는 말하고 있다. 불행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지만 고통은 지극히 내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에 가깝다. 설명되지 않고 타인이 해석할 수 없는 낱말의 나열을 나는 어떻게 보냈을까.

 내 고통은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가끔 즐거워서 잊고 지낸, 하지만 뼈 마디마디마다 박혀 있는 고통, 불쑥 찾아오는 불안과 공포.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금언도 나의 고통 앞에서 유효할 수 없다. 4) 그것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된 거니까.

 의미 없는 가정을 늘어놓는다. 결국 별거 아닌 일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내 고통은 너무나 나만의 것이어서 아무리 말해도 털어낼 수가 없다. 그저 알려줄 뿐이다. 세상에는 이런 고통도 있다고. 솔직하게 꺼내 놓고 관망하듯 지켜보고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건 순전히 당신의 몫임을 안다. 나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 쓸 뿐이다. 5)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했다. 누가 들으면 뭐 얼마나 가난했다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지만 나라에서 생활 보장을 해주고 빚쟁이가 집 앞까지 찾아오고 몇 없는 가구에 압류 딱지가 전부 붙여지고 수능이 끝난 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일하는 걸 보면 근거 자료로는 충분히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이니까, 나도 그땐 뭘 몰랐으니까 하는 말은 의미도 없고 방패로 쓰이지도 못한다. 엄마가 겪었던 모든 일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고 있었고 외면을 한 것도 나였다. 죽음,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부분과 알지 못하는 엄마의 고통이 그를 자살로 이끈 것이 아닐까.

 짐작되는 것들은 아주 많이 있다. 그의 고통에는 다가서지 못한다. 나는 엄마가 아니고 엄마의 불행조차 외면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한 사람의 고통에 다가설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공감의 영역을 초월해야 한다. 엄마가 되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는 절망을 나는 끝까지 알지 못하고 짐작할 수도 없다. 단지 그가 떠나기 전 내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엄마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그 말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외치면서 학교에 갔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우울증이라고, 잘 돌보라고 그랬는데 나는 엄마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도리어 큰소리를 친 것이다.

 그날은 아주 고요한 토요일이었고 다급한 목소리에 잠에서 깨니 엄마의 죽음이 내 앞으로 강한 파동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도 그렇게 큰 소리로 오랫동안 울 거란 확신은 지금도 들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죽을까 봐 무서워서, 무섭다는 말을, 죽지 말라는 말을, 이기적인 말들로 잡지 못했다. 잡은 적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졌다.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그날 있었던 사건과 사람들, 그리고, 변명을 하고 싶다면 그때 나는 열여덟이었다.

 나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외할머니와 착하고 여유로운 이모들과 삼촌이 있는 외가를 무척 사랑했었다. 장례식장에서 그들은 내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누군가를 때리면서 탓하고 있었고 큰 이모, 작은 이모, 삼촌은 얼빠진 나를 장례식장 대기실에 앉혀 두고 각자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자신들에겐 죄가 없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나는 지쳐 쓰러지고 싶었는데, 그냥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들은 내 양 옆으로 자리를 잡아 마치 내가 하나님이기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죄를 사하여 주길 바라는 모습에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다. 그때 나는 열여덟이었는데. 나는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는데. 엄마는 태어나서 나를 안아준 첫 번째 사람인데.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손이 따뜻했었는데 이제 엄마는 온기를 잃은 채 차가워지고 불길 속에서 한없이 뜨거워졌다가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는데 어떻게 내 앞에서 죄를 사하여 달라는 듯 자신들의 비겁함을 다 드러내는 걸까. 사랑이 사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들에게도 어떠한 고충이 있을 거라고 느끼지만 엄마 잃은 아이를 두고 내뱉은 그들의 고백은 명백한 폭력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라 포옹 한 번이 전부였다.

 발인 날, 삼촌은 돈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내게 전화번호를 남겼었다. 나한테 줄 돈이 있었다면 차라리 엄마한테 주지. 나는 차비 문제 때문에 학교에 걸어가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도 삼촌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고서 시작한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을 시작하고 그 마저도 힘들어질 때에도 외가에 도와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행복했다. 나를 세워 두고 했던 말들이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내가 했던 다짐을 생생하게 떠오른다. 외가에 가지도 않고 손 벌리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내가 굶어서 죽으면 죽었지, 저것들에게 빌빌거리지 않겠다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같은 해 커다란 사건이 한 번 더 터지면서 나는 구석으로 몰렸다.

 죽음은 내게 견고하고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자살에 대해 더욱더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엄마가 죽은 것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전부 내가 살아서 일어난 죗값처럼 보였다. 다 나 때문이다. 내가 살아서, 내가 죽지 못해서 이러는 거라고 여기며 구체적인 죽음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절망을 똑바로 보고 있는데도 무너져 갔고 끝이 없는 도로를 달리는 것 같았다. 멈추고 싶어도 누군가 나를 계속 가보라며 떠밀고 있었다. 의문조차 갖지 못하게 나를 채찍질하기 바빴다. 나는 죽음이란 쳇바퀴에 갇혀 발을 계속 구르고 있다. 숨을 마시는지 내뱉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나는 죽어서 없어져야겠다.

 몇 번의 사건과 자살 미수로 살아 있다. 나는 그곳에 너무 오래 있었지만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죽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았고 죽음은 내 일부가 되어 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내가 왜 그토록 엄마에 대해 쓰고 싶은지, 엄마 생각을 하다가 찾아오는 과호흡을 어떻게 버텼는지, 외가가 나에게 가한 폭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돈 몇 푼에 죄책감 좀 덜어보려고 한 그들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을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아무리 써도 내 인생을 다 보여줄 수가 없다. 언젠가 내 이야기로 소설을 써보려고 했지만 이건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기엔 너무도 긴 이야기이다. 나로 말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날로부터 십삼 년이 지났다. 십삼 년밖에 안 된 것 같기도 하고 십삼 년이나 지났나 싶기도 하다. 자살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선택이지 않느냐고 하는 것도 나는 잘 모르겠다. 엄마는 세상에 없고 나는 할 수 있으면 죽고 싶었다. 죽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다. 죽는 건 쉽지 않지만 너무 쉬운 일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도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죽지 못했고 죽지 않았고 죽음과 조금씩 떨어져 걷고 있다.

 내 고통을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를 바라고 쓰는 것이 아니다. 뱉어 내야 하는 감정이라는 게 있고 더 이상 감출 것도 감추고 싶은 것도 없다.

 나는 밝고 명랑하며 큰 목소리로 친구들과 떠드는 걸 좋아하고 춤과 노래를 가까이하며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한편으로는 불면증이란 오랜 내 친구 때문에 약 없이는 제대로 자지 못한다. 자살 유가족으로 살아남았고 기꺼이 자살을 위해 달려왔지만 아직 여기에 있다. 열심히 쓰고 먹고 자고 일하고 상담을 가고 약을 먹고 운동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죽음과 완전히 멀어졌다는 다짐을 할 수 없다. 확신만큼 무거운 약속은 없으니까. 다만 열여덟의 내가 스무 살이 되고 스물다섯을 지나 서른 하나가 된 이 순간엔 그다지 슬프지 않은 망망대해 속에서 유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애처롭게 울고 있는 열여덟의 나는 그곳에 있지만 반대편으로 걸어갈 준비는 마친 지 오래이다.

 이미 반대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달라진 풍경 속에서 보이는 것들을 6) 소중히 하고 싶어졌다. 끝없이 죽음에 가까워졌지만 이제 나는 나를 구하고 나아가고 있다. 나는 십 년이 넘는 싸움에서 나오고 있는 중이다. 아직 못 나온 사람들도 이미 빠져나와 다른 풍경을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떤 경우의 수가 놓인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는다. 이 믿음은 배신당해도 좋다. 나는 당신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래도 이왕이면 살았으면 좋겠다. 살아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그때 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을 대신 건넨다. 이기적이어도, 손가락질받아도 상관없다. 나는 이제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 천희란, 『자동 피아노』, (2019, 창비)

1) 천희란, 『자동 피아노』, (2019, 창비) 중 9p

2) 같은 책 중 19p

3) 같은 책 중 30p

4) 같은 책 중 31p

5) 같은 책 중 94p

6) 같은 책 중 146p


글쓴이: 현아 (https://instagram.com/withst4nd)

편집자: 민지

2023.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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