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현아 Nov 19. 2023

,

20.  쉬어가기


 낮은 목소리로 들리는 당신의 이야기, 꿈꾸며 이루어지길 바라는 희망, 함께 숨 쉬며 바라본 미래, 깎이지 않은 채 쌓여가는 현재, 텅 빈 눈에 고스란히 담긴 과거, 낯선 도시를 걸을 때마다 보이는 기분 좋은 풍경, 당신과 내가 나란히 서서 평생 동안 지켜낼 세계, 별조차 갇히지 않는 우주, 머리 위로 쏟아지는 오후 세 시의 햇볕,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작은 그림자, 등 위로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 도시 속 수 놓인 건물들 사이에 숨어버린 별빛, 태양에 부딪혀 겨우 색을 뿜어내는 달빛, 달아오른 이마를 쓸어내리는 당신의 손길, 코끝에 머무는 남해 선착장 냄새, 다시 찾아온 동풍의 소리, 까먹지 않으려고 저장해 놓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핸드폰, 멈추지 않고 들려오는 맑은 휘파람, 숨을 들이마시다 다시 내뱉으며 정신없이 이어지는 하모니카 연주, 그리운 사람이 사무침으로 번져 나를 주저앉힐 때 찾고 마는 구급차, 차곡차곡 쌓인 만큼 상자에 집어던져버리고 싶은 순간들, 당신에게 전하는 고백 사이에 생기는 공백을 참지 못하고 방백을 읊는 나, 내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당신, 나를 지상에 가둬버린 당신, 또다시 독백만 늘어놓는 나,

,

,

,

,

매거진의 이전글 죄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