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무서운 건 그런 게 아니라
무서운 건 그런 게 아니야 사라지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잊히는 게 무서운 거야 모두 떠나고 남은 껌껌한 방에 눈을 감은 채 내가 잊은 것들을 하나둘 씩 다시 그려나가고 너무나 많은 걸 잊었다고 나를 책망해 다정해서 눈물이 날 거 같던 첫사랑이나 다른 사람보다 곱절은 따뜻했던 엄마의 손이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울컥 터져버린 울음을 갈무리하던 순간이나 꽉꽉 막힌 도로 위에서 노크도 없이 찾아온 지독한 우울을 마주하거나 이상하게 그때만큼은 잊지 말자고 다짐했을 텐데 모래사장에 적힌 글씨를 파도가 잡아먹은 것처럼 약속이 쉽게 사라진 거야 나는 잊었다는 것도 잊고서 하루가 이틀인 줄 알고 살고 있었던 거야 잊지 말자는 약속만큼 싱거운 게 어디 있겠어 무섭다고 느끼는 순간조차 잊어버린 나는 평생 무서운 채로 살고 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