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사가고 싶지 않아

1막. 초승





엄마, 이번엔 어디로 가?

굴다리 옆에 빌라..

굴다리? 그러면 학교랑 너무 먼데..

그냥 걸어가야지


우리 집은 어려서부터 이사를 자주 갔다

2년에 한 번 꼴로 갔던 거 같다


다음 이사 때는 내 방 있는 집으로 가기로 해놓고

그 약속은 지금 몇 년째 이뤄지지 않는다

내 조그만 방은커녕

날 맞이해주는 건

벽지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쿰쿰한 냄새뿐이다


어느 날, 제일 친한 친구 집에 갔다 온 뒤로

우리 집은 하염없이 작아보였다

그 친구의 집은

이층집에, 마당까지 딸린,

그 마당에는 털 많은 개까지 키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집이었다


엄마, 우린 언제까지 이사 다녀야 해?

네 아빠가 다시 성공하면..


저 기약 없는 약속은

오히려 내 마음을 후벼 판다

지켜질 일 없을 걸 알수록

더 처참해진다


왜 우리 집은

제대로 된 집조차 없는지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걸까





엄마, 이번엔 어디로 가?

굴다리 옆에 빌라..

굴다리? 그러면 학교랑 너무 먼데..

그냥 걸어가야지


우리 아들, 미안해

이번에도 방 하나 주지 못해서

중학생인데도

엄마, 아빠, 동생이랑

같이 자게 만들어서


점점 그이로부터 들어오는 돈은 줄어들고

날이 지날수록 오르는 물가에

우리 가족 허리띠는 더 졸려진다


좋은 집을 가기 위해 이사 가는 게 아니라

싼 월세에 맞춰

이사 가는 우리 가족


자식들은 일어날 때

햇빛이 맞이해주는 게 아니라

천장에서부터 새어내려오는

곰팡이들이랑 같이 하루를 시작한다


날이 갈수록 태양과 멀어지는,

지하로 서서히 내려가는 우리 집


남편의 사업은 언제쯤 다시 성공할런지

사실 가망 없는 공장 하나 붙들고

그냥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도 남편을 믿어주고 싶은데

내 자식들 생각 때문인지

의심이 퀴퀴 올라온다


차라리 내가 일할 수 있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가망 없는 성공과 끝없는 이사 속에서,

우리 자식들에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며

오늘도 지하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