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잔에 물을 따른다

1막. 삭


물잔에 물을 따른다

한 방울, 두 방울

한 컵, 두 컵


채워도 채워도

비어 있는 나의 물잔

흐르는 호수를 다 부어도

저 바다를 이끌어와도

결국 바닥이 드러나는 나의 물잔


나는 물잔을 내려놓고,

물을 더 맑게 해보려 애쓴다.

흙탕물이 섞였나,

혹은 잔 자체가 깨졌나,

그 속을 닦아내고, 새로운 물을 붓고,

끝없는 반복 속에

나는 성장의 물잔을 채워낸다


그러나,

물이 넘친다 해도, 물이 맑아짐에도 더 깊어지는 갈증


나는 물이 전부일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성장은 찰나의 위로일 뿐,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결핍의 본질을 외면할 수는 없다.


물이 물잔을 삼킨다.

물이 흘러 넘쳐

내 물잔은 더 이상 물잔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

잔인지 물인지,

혹은 채워지지 않는 내 안의 욕망인지.


결국 물잔을 들고,

물에 물잔을 넣는다.

내가 담은 물잔이 물인가,

물이 담은 물잔이 나인가.


그 순간 깨닫는다.

저 바다 위 떠다니는 인간들이

모두 물 그 자체임을.

성장은 끝이 없고,

만족은 물거품처럼 흩어진다.


물에 물잔을 따른다.

비어도 가득하고,

가득해도 텅 빈,

채울 수 없는 내 물잔은

영원히 허기를 간직한

신기한 항아리.


나는 물을 바라본다.

그리고 물에 스며든다.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는 경계 속,

나는 그저

물 위에 비치는 나의 그림자일 뿐임을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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