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가지의 물로 불려낸 마음

by U BAE

며칠째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이맘때면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창가로 다가간다. 도시 외곽에 자리한 무등산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다. 평소라면 아파트 숲 위로 당당히 얼굴을 내밀고 있어야 할 산이, 오늘도 희뿌연 하늘에 녹아들어 형체가 없었다. 산이 하늘에 동화된 것인지, 하늘이 산을 지워버린 것인지. 미세먼지 농도는 여전히 '나쁨'이 분명해 보였다.


내 마음의 거울에도 그만큼의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아침에 읽은 어느 글귀에서 <섬집 아기>라는 노래 제목을 보았다. 매번 그렇듯 오늘도 그 노래를 꺼내 듣다 결국 어머니 생각에 잠겼다. 1년 반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을 안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늦은 여름날이었다. 요양병원을 찾아 그 쭉정이 같은 몸과 낯을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았다. 일어설 시간이 되어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건네자 어머니는 말했다.


“그려, 또 와.”


그럼요, 짧게 대답하고 돌아선 게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내게 건넨 그 한마디를 제외하면, 이제 어머니에 관한 많은 것들이 미세먼지 속의 산처럼 희미해져만 간다. 희미한 것들이 그러하듯, 미세먼지가 추억이나 그리움의 은유처럼 느껴지는 오전이었다.


주말 점심은 으레 라면이다. 찬장을 열었더니 엊그제 사 둔 라면 한 봉지가 있었다. ‘삼양1963’. 옛 추억을 자극하는 그 이름에 홀려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이다. 포장을 뜯으며 생각했다. 역시 맛도 옛날 그 맛이 날까.


어릴 적, 많은 것이 넉넉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흔한 게 라면이지만 당시 우리 집에서 그것은 특별식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가끔 동네 가게에서 라면 한 봉지를 사다 찬장에 깊숙이 넣어 두곤 했다. 그리고 바깥일로 고단해진 아버지가 돌아오면, 입맛을 돋우기 위해 그것을 꺼내어 끓여 냈다.


어머니는 라면 하나에 한 바가지쯤 되는 물을 붓고 끓였다. 그러면 라면 특유의 맵고 짠맛은 자취를 감춘다. 대신 사골 국물에 연한 간이 된 듯 구수한 맛이 우러나온다. 어머니가 조금 나눠준 국물과 아버지가 젓가락 끝으로 낚아채 건네준 면발 몇 가닥. 거기에 밥을 말아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흡족한 한 끼였다.


나는 지금도 라면을 끓일 때 물을 두세 배 더 잡는다. 수프는 반 정도 남긴다. 사람들은 싱겁지 않느냐 묻지만, 나는 여전히 그때 그 구수한 맛에 젖어 살고 있다. 라면 한 봉지의 물리적 양은 적었으나, 한 바가지의 물로 끓인 어머니의 마음은 그토록 넉넉했다.


내 어머니의 이름은 그저 ‘엄마’였다.


라면을 후루룩 먹고는 예정보다 며칠 앞당겨 혼자 성묫길에 올랐다. 도로 위에는 평소보다 늘어난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석당간 삼거리를 지나 메타세쿼이아 길에 접어들었다. 나무들은 지난가을의 무성하던 살점을 다 발라내고 서 있었다. 빗살무늬의 갈색 가지들이 마치 제 살을 다 내어준 어미 물고기의 가시처럼 보였다.


시골에 닿아 아미산을 지척에 두자 자욱하던 미세먼지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마음의 거울을 닦듯 그리움을 조금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 다시 석당간 삼거리를 지났다. 읍내 장터를 끼고 다리를 건너다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을 만났다.


다닥다닥, 수백 마리의 새들이 전깃줄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떨어지는 석양을 등 뒤에 업은 채 서로의 몸을 바짝 붙이고 있었다. 홀로 성묘를 다녀오며 느꼈던 쓸쓸함 위로 묘한 온기가 덮였다.


저 새들도 알고 있는 것일까. 흐릿한 삶 속에서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생의 무게를 함께 이고 가는 연대라는 것을. 한 바가지의 물로 불려낸 어머니의 마음이 내 삶의 전깃줄에 온기로 남아있듯, 나 또한 누군가 기댈 수 있는 따뜻한 품으로 살아가고 싶다. 희뿌연 잔상이 채 가시지 않은 공중에는, 노을을 입은 새들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 저물어가는 하루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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