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놀이터가 아파트가 드리운 그늘에 잠겨 있다.
시소는 한쪽 어깨가 내려앉은 채, 마치 그것이 제 본래 모습인 양 멈춰 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지.’
타인에게 덤덤히 건네는 말이거나,
스스로에게는 아직 견딜 만하다고 느낄 때에 가능한 말이다.
이런 일이나 저런 일 중 하나가 반복되는 시간을 겪고 나면,
목과 가슴 사이 어딘가에 큼지막한 돌덩이 하나가 박힌 듯한 감각이 남는다.
미처 풀리지 못한 감정들이 얽혀 답답하고 무거운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그 반복되는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한쪽으로 짓눌린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을 시간이 필요했다.
영하를 한참 밑도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그 추위 속에 몸과 마음을 맡겨 보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마음에만 두고 있던 곳이 있었고,
요즘 같은 시기라면 더 어울리는 자리였다.
도경계를 넘어 한 시간 반 거리의 익산 미륵사지에 닿았다.
익산 미륵사지는 미륵산 아래 넓게 펼쳐진 평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칼바람이 벌판을 가로질러 불었다.
연못의 잔잔한 물비늘 위에는 살얼음이 얼어 있고,
그 위에 내려앉은 눈은 마치 홑이불을 덮은 듯하였다.
하늘바다에 반도처럼 솟은 미륵산.
연못에 쌓인 눈은 푸른 하늘 곳곳에 목화솜처럼 반영되어 있었다.
동원(東院)에 위치한 연못을 오른쪽으로 끼고 걸었다.
멀리 동탑(東塔)이 동그마니 서 있었다.
손때가 느껴지지 않는 회백색의 차림이
시선의 온도를 더 낮추었다.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리에서
흰색의 물결이 내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마음속에 얽혀 있던 차가운 것들이
세상 밖으로 흘러나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딸랑, 딸랑.
풍탁(風鐸)의 푸른 소리가 무심히 찬바람을 가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벌판 위에 우뚝 선 두 기의 석탑,
동탑 상륜부의 뾰족한 찰주(擦柱)와
석탑 옥개석 모서리의 날카로운 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차갑고 예리한 풍경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속 소용돌이와 중압감을 풀어주는
역설로 다가왔다.
동탑에서 서탑으로.
마음의 마니차를 돌리 듯,
혹은 탑돌이를 하듯
두 탑이 이루는 정사각형의 둘레를 따라 걸었다.
서탑의 왼쪽으로 이십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쓰임을 기다리는 부재(部材)들이 무리를 지어 누워 있었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품은 황등석 위로
눈이 고르게 내려앉은 채였다.
미륵사지 석탑과 부재,
찬바람과 하얀 것들 사이에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오른쪽에 자리한 국립익산박물관에 들렀다.
‘탑이 품은 칼, 미륵사에 깃든 바람’
전시장 한쪽에는
미륵사지 서탑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가운데 하나인 손칼이 놓여 있었다.
일상에서 쓰이던 도구였던 손칼은
잘못된 글자를 긁어내는 삭도로 쓰이기도 했고,
승려들에게는
마음속 번뇌를 베어내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화려한 장식이 걷힌 자리에는
해어진 날과 가벼워진 무게만이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미륵사지의 찬바람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확 트인 김제평야 너머로 석양이 기울고 있었다.
그 빛을 바라보며,
내 마음에도 고요하고 따뜻한 기운이
천천히 스며들기를 바랐다.
하루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