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

왕관을 쓴 바보들을 향한 우아한 조롱

by Vibbidi Vobbidi
By Francisco Goya - Museo del Prado, Public Domain


작품: 프란시스코 고야,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 (1800)


최고 권력자의 무능을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목숨을 건 행위였을 것이다. 하물며 그 무대가 19세기의 절대 왕정국가 스페인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이 그림에서 프란시스코 고야는 이 통제 불가능해 보이는 리스크를 완벽하게 역이용하며, 미술사에서 가장 지적이고도 통쾌한 왕실 초상화 중 하나를 남겼다.


화려한 금실로 수놓은 실크 드레스와 가슴을 짓누를 듯 매달린 찬란한 훈장들. 그리고 그렇지 못한 눈부신 장식을 걸치고 있는 인물들의 얼굴. 순간 참기 힘든 실소가 터져 나온다. 19세기 프랑스의 비평가 테오필 고티에가 이 그림을 마주하고는 "마치 복권에 당첨된 동네 푸줏간 주인 가족 같다."며 독설을 남겼다는 일화가 따라붙는 건, 허영이란 빛날수록 더 많은 것을 드러내는 법이기 때문이다.


중앙, 권력의 구심점에 서 있는 것은 왕이 아니라 마리아 루이사 왕비다. 이것은 당시 붕괴되어 가던 스페인 국정의 지배 구조를 시각적으로 확실히 담아냈다. 실제 카를로스 4세는 통치 능력이 약한 군주로 평가되었고, 국가의 실권은 왕비와 그녀의 공공연한 내연남이라 루머가 돌았던 총리 마누엘 고도이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고 여겨지곤 했다. 고야는 국왕을 측면으로 밀어내고 왕비를 캔버스의 정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이 기형적인 권력 구조를 연상시키는 구도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눈빛, 억지로 지어낸 듯한 편협한 미소. 그리고 그 곁에 선 카를로스 4세는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듯, 우둔하고 초점 없는 표정으로 허공을 빠끔히 응시할 뿐이다. 심지어 그림 뒤쪽에 얼굴을 내민 왕의 누이는 기괴할 정도로 흉측한 노화의 흔적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고야는 이들을 의도적으로 일그러뜨려 괴물로 왜곡하지 않았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했을 뿐이다. 그는 권력자들의 시선이 정확히 어디에 꽂히는지를 알고 있었고 오만에 빠진 권력자들은 자신의 텅 빈 지성이나 표정보다 자신이 지닌 상징에 더 주목한다는 사실을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자신이 걸친 권력의 기호인 윤기가 흐르는 벨벳 옷, 다이아몬드의 반짝임, 가슴에 매달린 훈장의 광택만이 보일 뿐이다.


허영심에 쌓인 카를로스 4세와 왕비는 자신들의 일그러진 얼굴은 보지 못한 채, 당대 최고 미술가 고야의 테크닉으로 완벽하게 그려진 찬란하게 빛나는 훈장과 드레스의 자태에 매료되어 이 초상화를 왕실의 공식 초상으로 남겼고, 고야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 대가로 고야는 처벌은커녕 수석 궁정 화가로서의 입지와 부를 더욱 굳건히 다졌다.


거대한 캔버스 왼쪽 구석 뒤의 짙은 어둠 속 이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지켜보는 고야 자신의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붓을 든 채, 마치 "나는 그저 당신들이 보여주는 것을 그렸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듯 무심하게 관람객을 응시한다. 벨라스케스의 전통을 잇는 이 자기 삽입은, 후대의 시선을 의식하는 화가의 위치를 조용히 드러내준다.


우리는 흔히 예술가의 위대함을 타협하지 않는 비장함이나 가난한 투쟁에서 찾는다. 하지만 진짜 압도적인 지성은 가장 화려한 무대 위에서 클라이언트를 철저히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그들을 영원한 역사의 조롱거리로 박제해 버리는 여유에서 나오지 않을까 한다.


오늘 밤 11시, 이 기막힌 초상화 앞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굳이 참을 필요는 없다. 권력의 허상을 완벽하게 꿰뚫어 본 천재 화가의 이 대담한 사기극은, 예술이 진실을 무기 삼아 현실의 권력을 어떻게 우아하게 조롱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유쾌한 작품으로 남았다.


Vibbidi Vobbi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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