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강박을 비웃는 거대한 농담
작품: 페르난도 보테로, <12살의 모나리자>, 1959
오늘 밤 11시, 이 그림 앞에 서면 긴장이 풀린다.
날카로운 칼날 같던 미술관의 공기가 갑자기 푹신한 솜사탕처럼 변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창조한 인류 최고의 신비, ‘모나리자’가 보테로의 붓끝에서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양감을 보며 귀엽다거나 혹은 당혹스러워한다.
“너무 귀여워.”
“왜 이렇게 뚱뚱하게 그렸지?”
하지만 보테로는 단 한 번도 뚱뚱함을 그린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풍요를 그렸을 뿐이다.
지금까지 여성의 몸은 늘 무언가를 깎아내고 결핍시켜야 아름다움이라 불렸다. 혹은 아름다운 색과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미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보테로는 달랐다. 그는 형태를 확장하고, 공간을 가득 채우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 캔버스 속에서 모나리자의 미소는 더 이상 신비로운 수수께끼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규정한 아름다움의 규격을 모르는 듯 평화롭게 웃고 있다. 그녀의 터질 듯한 뺨과 둥근 어깨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몸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고 있는 몸일 뿐이다.
보테로는 르네상스부터 이어져 온 서구 미학의 엄숙주의를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려 단번에 터뜨려 버린다.
고통받던 뮤즈들이 이 그림 앞에 모인다면, 아마도 처음으로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며 함께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형태의 자유를 선포한다. 규격화된 미의 기준이라는 좁은 액자를 밀어내는 이 거대한 에너지는 이제 투어의 마지막 방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아직 한 점의 그림이 남아 있다. 마지막 전시실이다.
Vibbidi Vobbi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