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씨작가 Sep 10. 2024

작가에게 컬렉팅이란?

7번공은 갈색






나에게 컬렉팅은 삶의 기억을 모으는 일과 같다. 적은 돈으로 수집한 첫 작품은 김동수 작가의 포도송이 유화였다. 20호 크기였고, 2019년, 둘째를 임신했을 때 마음껏 먹고 싶은 마음에 구입했다. 네 개의 포도송이가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그 모습에서 우리 가족을 떠올렸다. 포도를 감싸는 종이의 디테일은 부모님이 포도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키운 모습을 닮았다. 나도 그녀처럼 가족에게 안녕을 빌어주고 싶었다. 이 작품을 보며 나 또한 내 작품 세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빌리어드 30cm 시리즈(no7) _ 직경 30cm _ Acrylic and ink on canvas _ 2023



두 번째 컬렉팅은 정길영 작가의 도자 작품이다. 에스프레소 잔과 트레이가 너무 예뻐서 구입했다. 코로나 시기에 이 작품을 보며 에스프레소 시리즈 작업을 시작했다. 드리퍼 세트도 있었지만, 나는 잔과 트레이만 샀다. 매번 볼 때마다 드리퍼 세트를 함께 구입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던 내가 드립 커피를 즐기게 되었고, 잔에 커피를 담아 그림을 그리며 내 일상을 채웠다. 그렇게 나의 에스프레소 시리즈는 진한 사랑처럼 내게 다가왔다.




세 번째 컬렉팅은 현대미술관에 작품을 반입한 기념으로 박능생 작가의 소품을 구입했다. 그날 나는 700만 원짜리 작품을 판매한 기념으로 북촌에서 팥빙수를 먹다가 옆에 있던 갤러리에서 이 작품을 만났다. 도시의 흔적을 기록한 옥색의 작품, 빨간 비키니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은근히 매력적이었다. 이 그림은 옆 나무가 유심히 봐서 집에 두고 보라는 의미로 구입하게 됐다. 컬렉팅은 이렇게 특별한 날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네 번째 컬렉팅은 하을 작가의 작품이다. 부산에서 만난 건축사 사무실에서 작가와 인연이 닿았다. 양서류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가르친 소년과 비슷한 생각을 품은 이 작가의 시선이 인상 깊었다. 세상을 양서류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이탈리아 카몰리 마을의 바닷속 풍경을 담은 작품을 구입했다. 동화 같은 집들이 펼쳐진 이 장면은 바다 색이 깊고 차분했다.




다섯 번째로 소장한 작품은 이윤엽 작가의 판화 작품이었다. 2022년 12월 15일,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꼬였을까 싶은 날에, 나는 이 작품을 만났다. 제목은 <꼬인 인생 풀어주는 꽈배기>. 그 문구는 마치 부적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황금색 액자에 담겨 내 방 벽에 걸린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꼬여 있던 인생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마침내 동그라미처럼 순환하는 삶을 되찾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꽈배기 모양의 인생을 풀어내고 싶었던 나는 이후 인사아트에서 개인전을 열 때,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들을 작품에 담았다. 그런데 그 동그라미들이 당구공이 될 줄은 그때의 나는 상상조차 못 했다.




2022년 12월, 나는 당구공을 그릴 생각은 꿈에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내 작품에 동그라미들이 그려지더니, 그것이 자연스럽게 포켓볼을 연상시켰다. 그렇게 작품을 하나둘씩 구매하며, 나는 나의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나의 작품 세계에 새롭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작품이 인연이 있다면, 그것 역시 내게는 운명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갤러리에 들렀을 때, 우연히 소장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노광> 작가의 작품이 그곳에서 첫 개관 전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 우리 집에 소장된 <발레>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 작품을 소장한 후, 노광 작가님을 직접 만날 기회도 생겼다. 노광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내가 대학 시절 배웠던 구상 세계와도 닮아 있었다. 나 역시 래핀에서 오신 스타체코 선생님께 그림을 배웠었기에 그 연관성은 더욱 와닿았다. 그 당시의 회화적 기법은 따라잡기 어려웠지만, 색과 빛은 언제나 정직했다. 어디에서 빛이 오고, 어떻게 떨어지는지를 정확히 계산해야 했다. 내가 소장한 <발레> 속 거울 앞에 앉은 여인은 서양 옷을 입고 있지만, 그 모습은 단아하고 정갈했다. 인물화를 잘 그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참 잘 그렸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내가 직접 구입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 작품은 소장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김일해 작가의 누드 작품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구입한 지 오래되어 그 당시 유행하던 화풍을 짐작하게 한다. 작은아버지께 소장품을 선물 받은 날, 우리 집은 갑자기 그림과 수집한 도서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일부는 정리했지만, 나에게는 이 작품들이 큰 자산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는 내게, 그들이 남긴 흔적과 역사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다.





나의 방 속 나의 소장품





에스프레소 잔 and 6번 공







이전 06화 작가노트를 쓰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