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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씨작가 Sep 10. 2024

작가노트를 쓰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6번공은 초록






처음에 나는 작가노트는 전시 서문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개인전을 준비했으니 작품에 대한 설명을 쓰니깐 당연히 작가노트가 곧 전시 서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작품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작가노트와 전시 서문은 별개라고 한다. 




빌리어드 30cm 시리즈 _ 직경 30cm _ Acrylic and ink on canvas _ 2023


작가노트는 작가가 작품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오래도록 작품과 대화를 했던 적이 있던가! 항상 전시 때마다 쓰는 일이 작가노트였는데, 작품을 제작하면서 끊임없이 작품과 대화하는 과정을 기록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그 작가노트를 좀 더 길게 쓸 수 있었다. 대부분 전시 서문은 A4 반 정도인데, 작가노트를 그렇게 줄여서 쓰면 작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말이다. 




그러니깐 작가의 그림이 곧 글이라면 글 속에 작품을 쓴 이유와 배경 혹은 재료에 대한 특별한 이유 등 왜 이 작업을 이 재료로 혹은 이 작업에 소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충분히 스토리텔링을 통해 진솔하게 쓸 이유를 생각해 보란 것이었다. 그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작가 본인이니깐, 평론가의 그림 평가를 받기 전에 본인 작품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깐 자신의 그림을 소설처럼 문장력을 갖춰서 쓸 수 있다면 작가 본인의 능력만큼 쓰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픽션보다는 현실 속에서 소재를 꺼내어 나만의 생각으로 재창조하는 것을 좋아하니깐 수필 형식으로 쓰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실 속에서 경험한 것들이 그림이 되었으니깐, 나의 경험을 함께한 동료 혹은 가족이라면 자연스럽게 작품 색을 이해하겠지만, 대다수 처음 보는 분들이라면 나의 작품을 통해서 나를 이해할 수 없으니깐 말이다. 그런데 나의 가족이지만 그림은 전혀 모르겠다는 분들도 많아서 작품 감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예술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그림 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는 글이다. 그런데 작품 감상은 자유인데 메시지가 너무 강하면 작품 감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니깐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작가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니깐 나는 더는 늦지 않는 시기에 나의 글을 쓰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삶과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요즘 시대상인 것 같기도 하다. 매일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세상은 온라인 세상이고, 그곳 세상에서 영상 혹은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런데 좋은 콘텐츠란 나의 작업에 대한 기록이므로 나는 이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2017년 개인전 이후 그림을 계속 생각했으니 만 7년은 그림을 그렸으니 그동안의 기록을 글로 정리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오래도록 작업하기 위해서 나는 그동안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써본다.




그렇게 작가에게 작가노트는 삶에 대한 기록과도 비슷했다.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표현방식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해서 기록은 필수이다. 옛날에는 반 고흐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가 작품 해석을 위한 기록물이 되었고, 우리나라 화가 중 이중섭이 부인과 주고받은 편지가 대중들에게 오래도록 관심을 받았다. 지금 시대는 SNS라는 소통 도구가 있어서 많은 작가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세상이 되었고, 이런 시대상을 이야기하면 동시대 예술가들은 너무나 많아졌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계속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야 한다. 




#billiard ball triangle _ 45X41cm _ metal and wood _ 2023




그래서 작가노트는 일기 쓰듯이 기록하는 작업 일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SNS에 매주 나의 기록물 사진을 그림과 함께 남기는 것 같다. 그렇게 청년 예술가로서의 삶을 기록했는데, 비록 지금은 청년은 아니지만 작년에 이 열차 레지던시에 재입주해서 마지막 5번 방에서의 삶을 남겨본다. 여기 이곳 나의 열차 작업실은 서울 지하철 역사 3층에서 1층 1호선 승강장을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열차 작업실, 3층






신호등 빨파노가 순서에 맞춰 켜지고, 열차 선로 길을 그려보면서 왜곡된 나의 시선을 생각해 보았다. 세상은 나의 상상 속에서 굴곡된 형태가 되어서 보여졌고 지금은 그러한 당.구.공이 되어서 내 삶을 담아내고 있다. 선로 위에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매체는 신호등이었다. 언제나 삶 속에서도 순서가 있었고, 규칙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나는 작업실에 머문다. 오늘도 이곳 열차 작업실에 가는 길에 이 문구를 발견했다.


그린라이트 set, 직경 30cm, Acrylic and ink on canvas _ 2023


 <비둘기에게 먹이주는 행위 금지> 2호선 신도림역, 비둘기가 찾을 수 있는 탈출구는 없다. 그들을 사람에 의해서 나갈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한 비둘기는 이곳이 대피소가 된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세상 밖을 날아갈 필요 없이 지하철 역사는 동물과 사람이 지나는 장소가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자유를 꿈꾼다. 




비둘기가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예술가로서 자유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예술가의 삶 또한 쉽지 않다. 대중의 선택을 받거나 간택되는 자가 되지 않으면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살아갈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나는 두렵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이것이 두렵다. 



나 또한 신도림 역사 내 먹이를 먹고 살아가는 비둘기가 될까 봐 두렵다.





비둘기에게 먹이주는 행위 금지! 2호선 신도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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