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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씨작가 Sep 10. 2024

예술인의 법 타령

5번공은 주황







2023년 2월 27일, 화요일. 나는 국회에서 열린  <예술인 자녀 돌봄 지원 사업 진단 및 발전 방향 모색> 토론회에 참석했다. 예봄 이용자로서 참석한 자리였지만, 사실 이 토론회는 나에게 여러 가지 새로운 고민을 던져주었다.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동안 작품 활동만 열심히 해왔지, 내가 법적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만레이 오마주 작업, 정아씨작가


세상은 생각보다 완벽하지 못하다. 그러니깐 세상을 당구대 테이블로 생각하면, 우리에게 저 감정의 스카프는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인생의 굴레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그린 작업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올바르고 정의로울까?



그러던 중, 문득 내가 쓴 글 한 편이 떠올랐다. 제목은 <창작자를 위한 법 그리고 긍정적인 밥> 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할까?'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이 시의 제목은 '긍정적인 밥'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배고픔은 숙명처럼 여겨지는 이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처음에는 법이 없어서 예술가로서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법이 없어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술인 복지법이 생겼기 때문에 비로소 예술인 복지 재단도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술가들에게도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오른 것은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의 비극적인 아사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예술인 복지법의 도입 시기와 맞물려 있었고, 대다수의 예술가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상위 1%의 예술가들만이 사회적 명성과 돈을 자연스럽게 얻는다. 그렇다면 그 상위 1%에 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끝없는 경쟁 속에서, 가진 자들이 이기는 게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위 1%는 예술인 복지 재단의 도움이 필요 없지만, 나머지 대다수 예술가들을 위한 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몇이든, 예술가는 언제나 창작을 하며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작품 활동에 쏟는다. 하지만 돈 걱정이 없다는 것은 노후 걱정이 없을 만큼의 경제적 안정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극소수다. 결국, 국가의 커다란 울타리 안에 예술가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예술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엄마 예술가로서, 나는 작품 활동과 아이 돌봄을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지 자주 고민한다. 2020년에야 예술인 활동 증명서가 있다면 보통의 직장 엄마들처럼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학교 돌봄은 여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 아이를 돌보며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는 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묻는다. 예술가로서, 엄마로서, 나는 어떤 법적 울타리 속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예술인자녀 돌봄 지원사업 토론회 후기




예술가들도 예술을 향유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이렇게 춤을 추면서 세상과 살아가고 싶다. 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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