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와 추억이 담길 때 더욱 소중해지는 물건
다섯 살 된 우주에게 첫 자전거가 생겼다. 그동안 동네 주민이 버리고 간 14인치 자전거를 주워 연습용으로 썼는데, 이제 너무 작아져 더 큰 자전거를 사러 우주와 함께 자전거포에 간 거다. 우주는 두 가지 모델의 자전거에 올라타 보며 더 편한 것을 고르고, 마음에 드는 색상을 선택했다. 우주가 고른 자전거에 새 페달이 조립되는 과정을 우주는 물끄러미 지켜봤다. 자전거포 사장님은 우주에게 자전거를 타는 위치에 대해 설명해주고, 우주는 날렵하게 자전거에 올라탔다. 우주의 몸에 안장 위치가 맞는지 살펴본 사장님은 그다음으로 열쇠식 자물쇠와 번호식 자물쇠를 꺼내 비교하며 보여줬다. 우주는 열쇠식 자물쇠를 골라 직접 자물쇠를 잠그고 푸는 연습을 해보았다. 사장님은 서비스로 자전거 앞 뒤에 조명을 달아주고 우주에게 직접 눌러 켜고 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모든 과정의 주인은 엄마, 아빠가 아닌 우주였다. 자전거를 선택하는 것도, 작동이 잘되는지 시험해보는 것도 모두 우주였고 모든 과정에서 우주의 의견이 최우선이 되었다.
이전에도 자전거는 있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정말 우주 인생 최초의 자전거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자전거를 끌고 나와 자전거포 앞 공터에서 페달을 굴리는 우주의 얼굴은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우주야, 새 자전거 타니 기분이 어때?”
“음-숲을 뛰는 기분이야!”
“우주 새 자전거 생겨서 진짜 좋겠다!”
“땡땡이 자전거도 좋았는데. 이제 우주는 이 세이버 자전거랑 모든 걸 함께 하겠네!”
세이버(우주가 지어준 자전거 이름)와 모든 걸 함께 하겠다는 우주의 말에 내 마음까지 설레었다.
어렸을 때 나는 많은 걸 가지지는 못했다. 기억에 남는 나의 첫 소유물은 알람 시계였는데, 그건 ‘나만의 방’과 함께 나의 아주 오랜 로망이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나의 꿈은 내 방에서 혼자 잠을 자고, 알람 시계 소리에 깨어나는 것이었다.
늘 단칸방 생활을 하다가, 거실과 부엌과 통로의 역할을 애매하게 하던 공간이 늘어난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 공간의 초입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부분이라 마치 지붕 아래 다락방 같은 구조였는데, 아무 데도 쓸데없는 그 애매한 공간은 나의 첫 ‘방’이 되었다. 아빠는 그 애매한 공간에 작은 철제 책상을 놔주었고 내가 소원해 마지않던 알람 시계를 사주었다. 문도 없는 그 공간 한 켠이 너무 소중했던 나는, 가난한 아빠가 사 온 알람 시계가 너무 좋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열두 살의 나는, 시계의 앞면을 누르면 조명이 들어오던 그 알람시계를 달각달각 눌러보며 아주 오랫동안 소중하게 그것을 사용했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꽤 쉽게 무언가를 얻는 우주를 보며 괜히 걱정이 될 때가 있었다. 모든 게 너무 당연하고, 손쉽고, 별거 아닌 것이 될까 봐 아이가 요구하는 것을 일부러 더 미루다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가 직접 고른 자전거를 뿌듯하게 바라보고 말을 건네고 아끼는 모습을 보며, 꼭 어렵게 얻어야만 소중해지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세이버를 계속 탈 수 있냐고 물으며, 어른이 되어도 이 자전거를 계속 탈 거라고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이 아이가 앞으로 ‘세이버’와 함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길, 앞으로도 자기만의 이야기와 추억이 담긴 물건의 가치를 아는 어른으로 자라길 살며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