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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Jun 08. 2022

새싹이 자라 나무가 될 때까지

“왜 새싹이 안 날까?”


아이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화분을 들여다보며 수십, 수백 번을 묻고 또 물었다.


“응, 곧 날 거야.”


아이에게 태연한 척, 곧 새싹이 날 거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조마조마했다. 집씨통 프로젝트로 신청해서 받은 도토리가 싹이 트고 작은 나무로 자라면 함께 산에 가서 옮겨 심어주기로 했는데, 도토리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새싹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프로젝트 관련 글을 찾아보니 싹이 날 때까지 보통 3-4주가 걸린다고 했다. 아직 2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가능성이 있구나 싶으면서도 물을 너무 많이 줬나, 우리 집 온도가 안 맞는 걸까, 혹시 죽은 도토리였으면 어쩌지, 너무 깊이 심었나, 하는 생각들로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혹시라도 새싹이 트지 않으면 아무 풀이라도 갖다가 심어줘야 하나 고민했다.


“엄마 이것 봐요!!”


3주째 되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화분을 들여다보던 아이가 나를 불렀다. 작은 나무 화분에 새싹 두 개가 새초롬하게 솟아있었다. 아이와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화분에 심은 도토리 네 개 중 두 개에서 싹이 나온 것이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인지 모른다. 신이 난 아이는 두 개의 새싹에 이름도 지어주었다. 하나는 똘똘이, 하나는 복슬이. 잊어버리지 않게 이름도 써놓자고 해서 화분에 이름도 써주고, 아이는 예쁜 그림도 그려 넣었다. 새싹이 움트고 난 후 아이는 전보다 더 자주 화분을 들여다봤다. 아이는 매일 새싹이 어제보다 커졌다고 기쁜 목소리로 나에게 소식을 전하고, 물을 줘야겠다며 조심스레 물을 떠다 화분에 골고루 뿌려줬다. 세 번째 새싹을 발견한 것도 아이였다.


“엄마! 이리 와보세요!”


아이의 상기된 목소리에 다가가 보니 첫 번째와 두 번째 새싹 중간 즈음에 아주 작은 새싹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이는 잔뜩 흥분해서 여기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뭔가가 보였다며, 세 번째 새싹을 발견한 순간을 나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해주었다.

​며칠 사이에 키가 꽤 큰 두 새싹 사이에 조그맣게 돋아난 세 번째 새싹의 이름은 복돌이가 되었다. 어디서 이렇게 구수한 이름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 덕분에 우리 집엔 복슬이와 똘똘이, 복돌이란 이름을 가진 새싹 삼형제가 함께 살게 되었다.

복슬이, 똘똘이, 복돌이 삼형제




아이와 함께 새싹이 트이길 기다리고 작고 여린 새싹이 조금씩 자라나는 걸 보면서, 새싹의 눈에 띄는 성장에 놀라워하는 아이를 보면서, 몇 년 전 이 아이가 아주 조그만 씨앗으로 처음 내 안에 자리를 잡았던 때가 생각났다. 동그란 작은 점이 조금씩 커져 곰돌이 젤리 모양이 되고 금세 팔, 다리가 자라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가던 것을 보며 얼마나 신기해했던가.

뱃속의 아기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아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나올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지 상상하던 날들, 다 필요 없고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간절히 바라던 날들, 툭툭 배를 차는 아이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던 날들, 정기 검진일이 되면 혹여나 아이한테 문제가 있다는 말이라도 들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마음 졸이던 날들.

그랬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도토리 새싹을 매일 들여다보며 즐거워하는 아이처럼 나도 내 안에서 자라나는 아기를 보며 설레었고, 혹여라도 잘 자라지 않을까 봐 걱정이 가득했다.

예정일을 3일 넘기고 드디어 아이를 만났을 때는 그저 감사하고 감사했다. 오랜 기다림과 축복 속에 태어난 아이를 들여다보며 사람이란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알겠다고 생각했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특별하고 애틋한 존재로 느껴졌다.


작은 새싹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야. 너는 알까. 네가 바로 엄마와 아빠에겐 그렇게 작고 여린 새싹 같은 존재라는 걸.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여전히 궁금하고, 혹여나 아플까 봐 항상 걱정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주고 싶은 엄마, 아빠의 마음을, 너는 알까.




“엄마, 이거 이제 심으러 갈까?”


“아니야, 더 커야 돼.”


“왜요?”


“새싹이 아직은 너무 작고 힘이 없잖아. 산에 가서 다른 큰 나무들 사이에서도 튼튼하게 자라려면 지금보다 더 커야 돼. 이만큼 키가 자라면 그때 심어주러 가자.”


“왜요?”


산에 가서 빨리 도토리나무를 심어주고 싶은 아이의 도돌이표 같은 ‘왜요’에 대답해주며 생각했다.

아이가 튼튼한 나무가 되어 홀로 서게 될 때는 언제일까, 하고. 그게 언제든 아이가 단단하게 자기만의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라면 좋겠다.




*집씨통 프로젝트(집에서 씨앗 키우는 통나무)

노을공원시민모임에서 2018년부터 시작된

씨앗부터 키워서 100개 숲 만들기의 일환으로

코로나로 인해 노을공원 내 도토리를 직접 심으러 가기 힘든 상황의 사람들을 위한 비대면 활동.

집씨통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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