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탄
(1) 폴란드 교환학생 수업
(2) 유대인 커뮤니티 봉사활동 : 홀로코스트 그 이후의 삶
(3) 크라쿠프 마라톤 대회 참가 : 한국과 폴란드의 마라톤
폴란드 대학에서는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 중에서 전공과 관련된 과목을 포함하여 다양한 분야의 과목을 선택할 수 있었다. 수업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신경생물학과 치료법, Business English, Pop Culture, Memory of Holocaust (홀로코스트 : 세계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등 전쟁포로 학살) 총 4과목을 수강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의 기전과 치료법 강의를 들으며, 학부 전공수업 중 정신간호, 성인간호, 인체구조와 기능(해부학) 수업과 연결 지어 전공지식의 폭을 좀 더 확장할 수 있었다. 수업은 PTSD와 관련된 많은 논문들을 중심으로 다루었는데,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과학적 사실들도 사회변화 또는 기술의 발전 등으로 뒤바뀔 수 있었다. 근거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더 나은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Business English 수업에서는 job shadowing, gig economy 등 회사나 사업에서 다뤄지는 표현과 용어들을 익힐 수 있었다. 게다가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이 아시아 대륙으로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상품명이나 기업 시스템 등 기존의 것을 잃지 않고 현지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도 배웠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많았는데, 내가 서양 기업의 건강한 개인주의 문화를 본받고 싶다고 하자, 폴란드인 친구는 오히려 아시아 기업의 정답고 친구 같은 문화를 본받고 싶다고 해서 관점의 차이가 있음에 놀랐다.
Pop culture 수업을 통해서는 그동안 자세히 배울 기회가 없었던 대중 미술의 특징, 앤디 워홀과 같은 유명한 화가 뿐 아니라 특수 문화의 대중성을 이끈 사회구조적 특징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기말고사 과제로 ‘시대변화에 따른 디즈니 프린세스의 성격이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 에 대해 7장 분량의 에세이를 작성하였다.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주입된 고정관념과 역할이 상당부문 미디어에 기인하며 이 구조는 이미 오랫동안 재생산되어 왔음을 깨달았다.
가장 기대가 되었던 Memory of Holocaust 수업에서는 주로 세계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이 겪었던 차별과 후유증을 중심으로 수업이 전개되었다. 유대인 예배당(Synagogue)을 방문하여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직접 눈으로 관찰하기도 하고, 홀로코스트 2세대 후손인 Ellen 작가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당시 생존자들의 후손들도 트라우마를 겪는가에 관한 내용으로 발표를 했다. 끔찍했던 기억을 후손에게 감추는 분들이 있는 반면, 투사하며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 세대 간 트라우마가 전달되는 매커니즘 연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심각하고 잘 알려진 사건일수록 더더욱 트라우마 전이가 더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들으며 7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때의 아픔을 간직하며, 역사를 기억하고 언제나 배우려고 하는 유럽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간직한 채 폴란드 오시비엥침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하니 암울함과 슬픔을 배로 느낄 수 있었다.
수업뿐만 아니라 교환학생 생활 동안의 다양한 시도는 내가 인생에 대해 입체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한다.
Memory of Holocaust 수업의 연장선으로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커뮤니티 센터를 방문한 유대인 분들에게 미리 준비된 식사를 대접하고 대화를 나누며, 랍비의 지도하에 함께 히브루어 노래를 불렀다.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 사회의 연결성이 견고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소속감과 안정감이 그 민족 사회를 좀 더 결속력 있고 끈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그들의 따뜻한 환대가 있었기에 좀 더 편안하게 대화하고, 유대인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달리기를 좋아해서 해외에서도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고자 했다. 날씨 화창한 10월의 토요일, 수백 명의 사람들과 5km를 뛰었다. 이제까지 제주도에서 익숙한 루트로 10km, 하프 마라톤만 뛰다가 수많은 낯선 이들 틈에서 뛰니 어색하면서 신기했다. 가족 단위로 출전한 선수들도 정말 많았다. 색다른 트랙부터 폭넓은 나이와 인종 스펙트럼까지 한국의 마라톤 대회와는 사뭇 달랐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경찰, 행인들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5km 마라톤을 완주하고 받은 바나나는 정말 꿀맛이었다! 5km 마라톤 이후에도 기숙사 주변 Gym을 등록해서 꾸준히 운동을 했는데, 연령에 상관없이 자신의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위해 운동을 하는 폴란드 시민들의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특히 요가수업을 하시는 할머니선생님, 크로스핏 수업을 하시는 할아버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 분들의 에너지에 무척 많은 영향을 받았고, 나도 언젠가 더 큰 어른이 되었을 때 이미 늙어버렸다 생각하지 말고 더 자주 움직이고 건강한 몸을 키우는 방법을 주변에 전파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4. ESN Band 콘서트 개최
크라쿠프의 Jagiellonian University에서는 교환학생 네트워크가 활발한 만큼 교환학생(Erasmus)을 위한 이벤트가 많이 열린다. 학기 초 밴드 동아리(ESN band) 부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나는 학부 동아리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고, 해외에서 콘서트를 하는 건 흔치 않은 기회였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다. 결과는 합격!
밴드 동아리는 매주 수요일 8시부터 10시까지 연습이 있었고, 한국에서 해왔던 합주연습 스타일과 사뭇 다른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래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악기를 통해 하나의 연주를 만들어내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1월 16일 저녁 8시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준비한 노래들을 선보였을 때 느꼈던 희열은 지금도 생생하다.
5. 연극 공연
밴드동아리와 비슷한 시기에 연극 동아리 부원도 모집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연극에 대해 배울 기회도 없었고, 막연하게 내 분야가 아니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시도해보기로 하고 신청했다.
매주 한 번씩 학생들과 모여 연극(Drama meeting)을 준비했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연기를 통한 감정전달이 잘 되려면 세밀한 부분까지 준비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내 대사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품, 조명, 노래 등 무대장치부터 연기를 할 때 발음, 몸짓, 상대방과의 교류 등 전반적인 흐름파악이 모두 조화를 이룰 때 배우의 감정묘사가 관중에게 진심으로 전달됨을 깨달았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것도, 무대 뒤에서 소품 준비를 하는 것들 모두 너무 재미있었고, (모든 배역들에게 주는 거지만) 마지막엔 상도 받았다!
6. 13개국 여행
저렴한 물가 덕에 현지 생활비를 아끼는 대신, 수업이 없는 주말마다 매달 두세 번씩 여행을 다녔다. 인증샷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생각 없이 낯선 거리를 걷기도 하고, 동행을 구해서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충동적으로 다음 날에 훌쩍 여행을 떠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팁투어(정해진 공간에서 즉흥적으로 시작되는 투어. 투어를 듣고 나서 투어를 통해 얻은 만큼 투여비를 냄) 를 듣기도 했다. 여행 인증샷도 별로 없었던, 가장 기본에 충실했던 여행들이 많았고, 대부분 무계획이었다. 국가별로 1개, 많으면 3개 도시 여행에 불과했으므로 완전히 그 나라를 이해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한 학기 동안 독일,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슬로바키아,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총 13개 국가를 방문하면서 한국에서는 만나기 어려울 수 있는 직군을 만나고 명확하지만 유연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20대의 시선으로 그 국가를 바라보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절대적인 길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코 풀리지 않는 일들을 가지고 고민하기보다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태도를 배웠다.
그렇게 나의 164일의 가출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나를 맞이하는 가족과 집, 거울 속의 나는 그대로인데 시간만 훌쩍 지나간 느낌이다. 그렇지만 뭔가 달랐다. 성취감의 기억은 아주 강렬했고,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좀 더 다독여주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와 에너지가 생겼다. 또한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한 일들을 일단 한번 시도해보는 단계로 발전했다. 그러다보니 요리, 그림, 영상 편집 등 새로운 취미가 생긴 건 덤. 더불어 그동안의 과정을 기록하고 되새김질하다보니 한 뼘 정도 성장한 나를 발견한 듯하다. 이제부턴 나 혼자 성장한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입체적인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사회의 선순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