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9 ~ 2020. 2 기간으로, 코로나 시기 이전임을 사전에 밝힘]
164일 간의 폴란드 크라쿠프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겉보기에 달라진 건 없더라도 내가 보고 들었던 모든 경험들의 잔상이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전에는 해외 생활 몇 개월로 뭐가 달라질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나 자신과 사회를 볼 때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가졌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개개인의 이십대, 특히 대학생활은 모두 소중하고 특별하다. 나 또한 소중한 대학생활 경험 중 하나로 해외파견 교류수학을 다녀오게 되었고, 이에 대한 수기를 쓰고자 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탄
(1) 교환학생 계기와 준비과정
(2) 산티아고 순례길 끝에서 제주도를 외치다
2탄
(1) 폴란드 교환학생 수업
(2) 유대인 커뮤니티 봉사활동 : 홀로코스트 그 이후의 삶
(3) 크라쿠프 마라톤 대회 참가 : 한국과 폴란드의 마라톤
(4) 밴드 콘서트 개최 : 코리안 '드러머'의 활약
3탄
(1) 13개국 여행 : 나의 우주와 그들의 우주가 만났다
(3) 소감
제주도에서 태어나 줄곧 집밥을 먹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낯선 땅에서, 혼자, 자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있었다. 또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주어진 시간 내 최대한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고, 현지인들의 관점을 이해하려면, ‘유럽’ 대륙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였다. ( 오랜 역사를 갖고 발전해온 유럽의 문화를 추천해주신 아버지에게도 감사) 공인어학성적을 취득하였다면, 국가를 선정해야 한다. 개인마다 가고 싶은 나라가 다르겠지만, 나는 파견국가 선정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1) 저렴한 물가 (현지 생활비 절약)
2) 주변국과의 교통편이성 (여행의 편리함)
3) 해당 학교 교환학생 네트워크 (현지 교환학생들과 친목 쌓기)
며칠 동안 고심한 결과, 중앙유럽에 위치해 있어 주변국 여행이 편리하며, 물가가 저렴하고, 자국 내에서 교환학생 네트워크가 활발하기로 유명한 폴란드 크라쿠프 Jagiellonian 대학으로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합격 통보가 나왔고, 그 때부터 해당 대학으로 파견 갔었던 분들로부터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비자 신청 절차, 현지 분위기, 현지에서 열리는 행사, 언어, 학교 수업 등 영어권국가에 비해 정보가 많지는 않았지만, 알아볼수록 점점 내가 해외 교류수학을 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고, 기대되었다.
교환학생을 가기 전 다음과 같은 소소한 목표를 세웠다.
(1)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번은 시도해보기
(2) 매일 그날의 경험을 기록하기
교환학생을 시작하기 전 나에게 작은 성공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위축된 나를 깨워서 자신감을 주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의 단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마침 폴란드 대학도 10월에 개강을 할 예정이었고, 나는 한 달 전, 9월에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을 걸어보기로 했다. 교환학생과 순례길 짐을 같이 준비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일단 결심하니 준비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순례길 첫 날 7kg의 배낭을 지고, 혼자 아직 동이 트지 않은 포르투갈의 거리에 나섰을 때 느꼈던 두려움, 떨림, 무서움, 기대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낯선 곳을 갈 때마다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기를 반복하다가, 점점 자신감이 생기고, 언제 쉬어야 할지 요령을 터득했다. 또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났고, 서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걷다가 헤어짐을 반복했다. 그 날 목표로 한 거리를 걷고, 저녁에 알베르게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던 때가 하루 중 정말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좋았던 순간만 있던 건 아니었다. 7시간을 걸어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했는데, 숙소 정원이 다 차서 1시간을 더 걸어야 할 때도 있었고, 갑자기 외로움이 덮쳐오기도 하고, 어깨와 허리, 발이 너무 아파서 그냥 쉴까를 수없이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엔 발목을 삐어서 절뚝거리며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그래도 절실하게 깨달았던 건 처음엔 혼자지만, 과정은 함께 라는 사실이었다.
순례길에서 인연을 맺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캘리그라피를 적어서 전달했다. 내가 걷는 길에 등장해서 도움을 준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 나라 언어로 적어가면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10개 국적 이상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나라마다 감사함을 전달하는 ‘말’은 달랐지만, 어떤 언어로 전달하던지 간에 그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언어는 소통 전달의 매개체이지만, 본질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세계 어디서나 같았다.
한국의 섬 제주도에서 먼 타국으로 오고, 430km를 걸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학교 현수막을 펼쳤을 때, 내가 막연하게 바라기만 했던 일을 해냈다는 희열감과 그동안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행동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했다는 게 뿌듯했다.
주저했던 일을 시도해서 성취한 경험은 이후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에도 든든한 힘이 되었다. 또한 길을 걸으며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령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경험들은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