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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주 변호사 Aug 23. 2017

어머니의 이름으로

어느 한 명예훼손 사건을 처리하며

                                                                                                                                                                                                                                                                                                                                                


한 달 전쯤 한 아주머니께서 떨리는 목소리로 상담 요청을 하셨다. 


"인터넷에서 영상 보고 연락드리는데요. 댓글 명예훼손사건 관련해서 상담 좀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후 늦게 오신 아주머님은 얼굴이 사색이 된 상태였다. 



애기인즉슨 아주머니의 아들이 현재 대학교 1학년인데 1년 전인 고3 때 쓴 인터넷 댓글로 인해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검찰청에서 연락이 와서 어제 조사를 받고 왔는데 이제 우리 아들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희 아들 기술직 공무원이 꿈인데 잘못되면 어떡해요."


아주머니는 울먹이며 연신 초초해하셨다.



"초범에 어리고 모욕의 정도가 그리 중하지 않으니 반성하고 선처를 바란다면 기소유예 정도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런 사건 같은 경우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보다는 아드님의 반성문과 부모님의 탄원서를 제출하고 피해자와 합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세요."


특별히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여 최대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조언해 드린 후 아주머니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아주머니가 다시 사무실을 오셨다. 피해자와의 합의가 실패했다며 아무래도 불안하니 사건을 맡아달라고 하셨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서둘러 의견서를 작성해 검찰청에 제출했다. 의견서를 제출한 이후에도 아주머니는 끊임없이 전화를 하셨다.


 "변호사님, 아들 괜찮겠죠?" 


"벌금형 나오진 않겠죠?"


" 아직 처분은 안 나오는 건가요?"


조금 지치기는 하였지만 아들일로 고생하는 아주머니가 애처로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안심시켜드렸다.


"차라리 내가 했으면 이렇게까지 걱정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 진심으로 차라리 내가 한 거였다면 좋겠어요."


아주머니는 진심으로 아들의 모든 잘못을 본인이 대신 책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심지어는 아들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도 나쁜 기억이 남을 것 같다는 이유로 꺼렸다. 나는 미성년자의 경우 반성문이 꼭 필요하다고 아주머니를 최대한 설득하였고 거의 반강제적으로 반성문을 검찰청에 제출하게 했다. 


비록 대학생이기는 하지만 성년자인 아들이 직접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어머니가 나서서 처리하는 모습이 나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과거에 내가 보았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이런 의문이 처음 든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중학생인 아들을 두고 있다. 그런데 중학생인 아들이 집안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주인공은 아들의 살인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거듭된 고민 끝에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중학생인 아들이 저지른 살인을 주인공의 고령의 어머니에게 뒤집어 씌울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 것은 주인공 어머니의 태도였다. 주인공 어머니는 어떻게든 아들인 주인공이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깨닫게 하기 위해 노력할 뿐 아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세대를 뛰어넘는 엄청난 부성애이자 모성애였다. 소설을 읽을 당시에도 주인공과 주인공 어머니의 행동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자식에게 잘못을 스스로 책임지게 하지 않을까? 왜 부모가 따끔하게 본인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받게 하지 않고 감싸려고만 드는 것일까? 


변호사가 되고 아들을 변호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니 다시 그때의 소설 속 주인공과 어머니에 대한 의문점들이 함께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궁금증이 떠나지 않았고  결국 동료이자 어린 아들을 두고있는 변호사와 저녁을 먹으며 아주머니에 대한 애기를 꺼냈다.


"그 아주머니 자식일에 너무 예민하신 거 같아요.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따끔하게 혼을 내고 아들이 해결하도록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동료 변호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문 변호사는 아직 자식을 안 낳아봐서 몰라." "자식일은 정말 먼가 다르다고."


다행히 아주머니 아들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은 사건 정도가 경미하다는 판단하에 입건도 되지 않고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비록 법리적으로 사건은 잘 해결되었지만 심정적으로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기 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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