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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주 변호사 Nov 08. 2020

만화책과 아저씨


1. 주말임에도 업무를 위해 잠시 태블릿을 켰다. 주말에 하는 업무가 집중이 될 리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터넷의 바다로 빠져들었다. 인터넷에서 과거 내가 좋아하던 "슛"이라는 만화책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무심결에 사이트로 들어가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슛"은 고등학교 축구부에 대한 만화인데 전형적인 비현실적인 스포츠 학원물이다. 업무를 하던 도중에 만화를 보기 시작하니 당연히 일은 제처 두고 만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2.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 만화책을 보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5학년 때쯤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2주에 한번 꼴로 "아이큐 점프" 등의 만화잡지가 발행되었는데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게 되면 항상 문구점에 들러 만화잡지를 구매했었다. 문구점에서 만화잡지를 구매하던 버릇은 중학교 때로 이어졌다. 마침 중학교를 들어가자마자 책 대여점 유행이 일어났다. 당시 아파트 단지 상가 건물마다 책 대여점이 하나씩은 있었다.    





3. 신간은 1권에 300원, 신간 아닌 것은 200원이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방과 후 집에 들어가기 전 책 대여점에 들르는 것은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그 날 대여점 사장님에게 신간 입고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였다. 신간이 없다면 그때 다른 볼만한 만화책을 훑기 시작했다. 중 3 때쯤부터는 책 대여점에서 안 본 만화책이 없을 정도였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 만화책을 보는 것은 상당한 위험성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 만화책으로 재미와 스릴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책상 앞에 펼쳐진 것은 교과서와 문제집이었지만 책상 아래에는 만화책이 숨겨져 있던 날이 많았다.





4. 학창 시절 유일한 취미였던 만화책 보기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성인이 되면서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시기는 마침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웹툰이 급속히 발전하던 때였다. 더 이상 종이 만화책은 이전만큼의 인기를 구가하지 못하고 편의점보다 많았던 책 대여점들도 차츰 자취를 감춰 갔다. 종이 만화책을 점차 웹툰이 대체해 갔지만 종이 만화책의 열렬한 구독자였던 나는 웹툰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20대 중반부터 대부분의 또래들은 항상 핸드폰으로 웹툰을 구독하였지만 나는 일절 웹툰을 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책장을 넘기며 숨죽이며 보던 종이 만화책에 비해 핸드폰 화면 터치로 보는 웹툰은 재미가 없었다. 종이 만화책에 대한 의리를 져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이 내심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5. 요즘에는 종이 만화책을 보고 싶어도 이를 대여할 만한 책 대여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옛날 만화책을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곳도 대부분 만화책을 스캔하여 올려놓은 곳이 대부분이다. 태블릿으로 만화책을 보면서도 아무래도 과거 학창 시절의 종이만화책에서 느꼈던 진정한 몰입은 경험하기 힘들었다. 그 옛날 LP판을 그리워하던 아버지 세대들처럼 나도 종이 만화책을 그리워하는 진정한 아저씨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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