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가 먹어가면서 효자가 된다더니 생전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어머니 환갑기념 해외여행을 떠났다. 요새는 환갑이 되었다고 잔치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여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해볼까 해서 내린 결정이었다(이러한 결정에는 아내의 엄청난 배려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막상 젊은 때는 어머니와 함께 마트 한번 가지 않던 내가 이렇게 변한 모습에 스스로도 신기했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을 간 것이었기 때문에 렌트카를 빌려 아버지와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하였다. 아버지는 자꾸 운전이 예전같지 않다는 하셨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러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모든 부분에서 만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예순이 넘어가시면서 확실히 운전 중 반응속도가 떨어지신 것이 보였다. 길을 찾으면서도 새삼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을 실감하였다. 예전에 아버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내비게이션이었다. 과거 믿을 것이라고는 전국지도 한장과 감각밖에 없던 시절 아버지는 지도 한장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잘도 찾아다니셨다. 여행 중에는 내비게이션를 켜고 가는데도 내비게이션이 보이시지 않는다고 하셔 교차로가 나오면 방향을 계속해서 알려드려야 했다.
운전 뿐만이 아니라 10여 일동안 거의 하루종일 부모님과 함께 다니면서 마음이 짠한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효자가 된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마음이 짠하니 부모님에게 좀 더 잘해드리고 싶었다. 과거의 부모님과 다른 모습을 볼 때 부모님이 나를 돌봐주는 관계에서 내가 부모님을 들여다봐야하는 관계로 변화하기 시작할 때, 그 변화하는 것에 대한 낯설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식들이 나이가 먹어갈수록 효자가 되는 것은 이제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끝이 어렴풋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또 유별나게 효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부모님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이전보다 부쩍 어머니에게 연락을 자주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너나 사고치지 말고 잘하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아들이기도 하지만 모든 관계는 균형이 중요하다. 너무 한쪽에 치우친 관계는 다른관계에서 문제를 발생시키기 마련이다. 내 삶을 균형있게 잘 사는 와중에서 부모님과의 관계도 돈독하게 유지하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