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시인의 성추문 사태를 보고
최근 한국 문학계가 큰 이슈로 연일 인터넷과 신문기사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고은 시인과 관련된 성추문 문제이다. 처음 최영미 시인이 문제를 제기한 후 여기저기서 과거 고은 시인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정황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고은 시인이 과거 여성에게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만은 어느정도 사실인 듯 하다.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번지 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고은 시인의 부적절한 행동을 옹호하는 입장이 있다.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이고 수십 년간 우리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 위인이었는데 그가 그런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리 없고 오히려 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그동안의 행적에 비추어 보면 문제제기에 의심이 간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고은시인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과거 그가 썼던 수많은 시와 문학작품들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성추문이 있는 사람이니만큼 더 이상 그의 작품에 대한 칭송은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유명인들 중 상당수는 그들의 부적절한 사생활로 인해 무수히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미국 전대통령 빌클린턴은 과거 백악관 여직원과의 성추문으로 탄핵 직전의 위기에 내몰렸다. 시인 김수영은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가장이었다. 페스탈로치는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모두 고아원에 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였다. 그 밖에도 수많은 유명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허물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위인들에게 과오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과실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빌클린턴 재임 당시 미국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번영기를 누렸다. 시인 김수영의 시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해준다. 페스탈로치가 당시 아동교육에 끼친 영향은 현재의 교육 현장까지 미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공은 공대로 칭찬하고 과는 과대로 비판하는 것이다. 고은 시인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이전 고은 시인의 업적을 핑계삼아 옹호해서도 안될 것이며 부적절한 행동의 비판을 넘어 그의 작품들에 대한 근거없는 폄훼 또한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칭찬과 비판에 대한 정당성은 공과 과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