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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Park Nov 30. 2023

비로소 삶에 조화로울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을 당신에게 보내요.

하루의 24시간 중 잠자는 4-5시간을 제외하고 나의 일을 위해 패턴이 맞춰진 나로서는 회사가 곧 집이고, 집이 곧 회사이며, 동료가 곧 가족이고, 가족이 곧 동료가 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경영 컨설턴트인 나는 악명 높은 직업의 특성답게 야근과 주말 근무가 피할 수 없는 숙명임에도 이를 긍정의 힘으로 버틸 수 있는 건, 그 일상을 깊은 유대로 함께 보내고 있는 동료들 덕분이었으리라. 눈앞에 놓인 업무와 고객의 애로사항을 치밀하게 고려하지 못하고 프로젝트의 전경을 둘러보기를 소홀히 한다면 수많은 논쟁과 갈등 속에 던져지기에. 이러한 고충을 잘 아는 동병상련들의 격려와 응원은 이를 흘려보내는 작지만 위대한 힘이 되어준다.


다만, 지난 상반기를 기점으로 함께 으쌰으쌰 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 ’ 아쉬움‘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에는 조금 더 복잡하고 형용할 수 없는 상실감도 느껴졌지만 함께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본인의 일을 완수한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라. 그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앞으로의 길을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늘 그랬듯 애정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 최고의 애티튜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직장인의 삶은 계속되어 남은 자들의 사기를 북돋아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도 중요하다.


“좋은 동료들이 떠났지만, 우린 여전히 할 수 있어!”

웃음으로 서로를 다독이고, 좌절하지 않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살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속도가 조금 느려졌대도 우리 나아갈 수 있노라며 여전히 그들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두 달간 떠난 이들의 빈자리와 상실에 번아웃이 온 것 같은 상사의 힘이 되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나 또한 어딘가 엇나가고 있었음을 더 빨리 예민하게 알아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긍정이든 부정이든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너무 얽매이면, 이 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때 나 자신을 향하던 분노와 짜증은 외부로도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였다면 서로를 더 돌아보고 생각의 환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멘털 케어를 해가며 우리의 오늘의 불안과 고민이 내일의 잔여물로 남아 몸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결국에는 앙금으로 남아 탁한 마음이 되지 않도록 정화를 했어야 하는데.


조금 해소가 된 시점에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서로와 대화 나누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배려를 위해 솔직하지 못했던 마음은 저마다의 내면에서 자아의 이런저런 추측과 상상의 나래에 던져져 오해와 서운함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가 평소와는 다른 경직되고 가라앉은 공기를 내뿜다 보니 이 전과는 다른 퀄리티와 일관되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사람인지라 감정이 배제되지 못하고 곪아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물론 너무 날 것의 마음을 즉각적으로 내보이는 것 역시 경솔해 보이고, 그 마음이 가벼워 보일 수 있어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는 명확한 그 지점이 어딜지를 고민하여 어느 정도 정제된 단어와 표현으로 내보내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


’ 저는 당신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는 직접적인 말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눈과 부드러운 미소, 온화한 손길과 응원 같은 것일진대. 현 회사에서 동갑인지라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와 이런 오해들이 쌓여 풀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업무만 하다 보니 어느 날 저녁은 결국 삼키지 못한 마음이 터져 나와 낮이었다면 바깥의 송현광장이 눈에 들어왔을 텐데. 어두운 저녁이 다 되어 회의실 창문은 바깥이 아닌 내부를 비추고 있다. 서로에게 쌓인 서운함을 각자의 언어와 표현으로 내뱉고 잠시간 멍하니 창에 비치는 내부의 불안한 광경이 아니라 그 외부를 보고자 집중하다 보면 그제야 우리가 감정을 삭이며 함께 거닐던 공원과 우리와 달리 평온하게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다.


서로가 서운하고 속상했다며 퍼붓던 마음은 어느새 바깥에 꺼내진 아이스크림 포장용 드라이아이스처럼 기화되어 후회와 미안함이 순식간에 주변을 감싼다. 우리 참 좋았는데, 우리 서로 더 잘 풀 수 있었고, 충분히 더 대화할 수 있었는데. 왜 이토록 많은 나날을 혼자서 앓아왔을까.


결국은 서로를 찌르는 것이 두렵고 아직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소중함을 잊지 못해 삼키고 삼켜보려 용쓰던 것이 아니었을까.


돌보지 못한 날 선 마음이 이토록 예리하다. 타인을 찌르다 못해 결국은 나를 긁고 나서야 아픈 걸 알게 되니. 30살이 되어서도 인격 수양에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래도 뜨거웠던 것을 쏟아낸 후에 우리는 비로소 안정을 찾고 눈을 멀게 한 증오를 걷어내어 사실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 대화를 마친 저녁도 야근을 했고, 열 두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에서야 몸을 내 침대에 뉘일 수 있었다.


한 발 내딛는 것조차 버겁도록 내 몸에 얽혀있던 존재를 알아채기도 어려웠던 실타래를 하나 둘 풀고 나니 어제도 그제도 누웠던 나의 침대에 실로 오랜만에 눕는 것 같은 낯선 느낌을 받았다. 잠들기 위해 이제야 내 방에 몸을 뉘인 것 같은 이 기분은 오랜 여행 또는 바깥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내 동료, 내가 다니는 통근 길 매일 마주하는 새로운 사람들.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이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내면에 갇혀 에너지가 순환하지 못하는 것은 삶의 조화를 어렵도록 하는 것임을 느끼며. 조금 더 외면에 시선을 두고 주변과 어우러지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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