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2024년 12월 3일,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었다.
사람은 큰 일을 겪었을 때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기억한다는데, 나도 그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에게 "에이, 무슨 소리야? 딥페이크 아니야?" 라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반응했다고 하는 걸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허상의 일' 정도로만 여겨질 정도의 것이었던 모양이긴 하다.
그리고 2025년 4월 4일, 헌법 재판소에서 윤석열의 탄핵이 결정되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전' 대통령이 된 것이다. 매체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호를 제외하고는 모든 혜택이 전부 사라진다고 한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건 기소되어 있는 것에서 100만 원 이상의 유죄가 확정되면 아예 당선 무효가 되는데, 이렇게 되는 경우 전 대통령도 아니라서 국민의 힘에서 선거 보전비 400억 가까이를 물어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어쨌든, 우리는 역사의 지난한 과정들을 지나왔다.
비록 나는 그러지 못했을지언정 내 친구들은 1차 남태령과 2차 남태령의 현장에 모두 있었고, 또 누군가는 4월 1일부터 4월 4일까지 안국역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박근혜 탄핵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나갔던 2016년보다 광장은 소수자에게도 열린 곳이 되었고, 그것을 무지개 색 퀴어 의제 표어를 적어둔 피켓을 들고 돌아다니는 이들에게 '이게 뭐냐'고 묻고는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던 날 실감했다. 우리는 조금씩 함께 더 나아가는 사람들이 된 셈이다. 이른바 전화위복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글을 쓰는 건 아니라, 역사와 함께 찬찬히 다른 글에서 다뤄보겠다.
윤석열의 탄핵 선고문은 박근혜 탄핵 선고문에 비해 훨씬 더 과격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단다. 사실 정 반대의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한 곳도 있었으므로 어디에서 합의의 어려움을 겪었는가를 짐작하게도 했다. 그리고 4월 4일 11시 22분, 거짓말처럼 주문이 문형배 당시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의 입에서 나왔던 날, 당연한 결과라고 짐작하던 이들까지도 울고 웃고 했다. SNS에는 '너무 서럽게 울면 윤석열 지지자처럼 보일까 봐 그렇게 못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도 올라오곤 했다. 이후 각종 SNS를 중심으로, 혹은 유튜브 영상 추천에는 문형배 재판관의 과거 청문회 때의 일화나 김장하 선생의 다큐멘터리 영상 일부가 역주행(?)을 해서 올라와 그에 대한 이야기가 터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말했지만, 나도 봤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으니까. 독서감상문이 수백 건 올라와 있는 블로그는 이미 내 추천 도서 목록으로 잘 쓰고 있었고,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식으로 영상을 보고 온 사람마다 감동적이라고 할까. 보고 나왔더니 나도 똑같이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래? 평균만치만 살자고 다짐해서 그보다 좀 더 쌓인 자신의 재산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니. 당시 의원이었던 표창원 의원이나 박지원 의원은 이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거나, 역대 가장 청렴한 법관이라고 표현했다. 동감한다. 한덕수 대행이 임명하고자 한 사람은 계엄 다음 날 안가 회동을 했던 사람이다. 비교가 되어도 어떻게 이렇게 비교가 되나 싶은 생각이 들면, 같은 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개중에 가장 심금을 울렸던 건 자신을 꾸준히 지원해준 김장하 선생과의 이야기일 것이다. 김장하 선생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찾아간 문 권한대행에게 그는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 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장하 선생의 인품이야 굳이 이 일화가 아니더라도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정말 몸소 가슴에 품고 실천하고자 하는 당사자의 일화들이었다. 사법 개혁이 절실하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런 법관들을 드물지만 보게 된다. 가끔은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찾아온 건가 싶은 경외심도 든다. 당사자의 인생에 대한 경외심도 경외심이지만, 그런 사람에게 감화된 제3자가 또 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감동 받지 않고 지나가기 어려웠던 거다. 이 사회에 갚으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갚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물론 이번 재판의 결과는 법리에 따라 해석한 결과다. 그러나, 그의 지난 행적을 비롯해 이제까지의 발자취를 보면 그 노력의 흔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내러티브에서 오는 감동을 느낀 것일 테다. 물론 그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하게 선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굴곡이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사람은 악할 수 없다. 악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