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사랑이라는 단어는 꽤 거리감이 있는 단어 같다. 나 역시 아주 오랜 시간 두 단어를 연결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학생 때 교수님께서는 "나이를 먹으면 통찰력은 생기는데, 암기력이 쪼달려진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었는데, 최근 그 이야기를 절감하고 있다. 서른이 넘어서야 정치와 사랑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성선설과 성악설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근래에 직장 동료로부터 그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말을 듣고 아니라며 화를 버럭 낸 적이 있다. 사실 화까지 낼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인문학의 무가치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더니 좀 언짢았던 모양이다. 어쨌건, 성선설과 선악설은 여러 과목에서 다루는 주제이다. 도덕, 사회, 역사 시간에 두루 다루는 주제인데 그 이유는 각 과목의 성격과 연관되어 있다. 우선 철학적으로 중요한 논제이니 도덕과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사회 시간과 역사 시간에 다루는 이유는 비슷한데, 사회과 과목 중에서도 일반사회 과목으로 분류되는 과목에서는 이 주제가 현대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영향력을 중심으로 교과 내용으로 편제한 것이다. 역사도 이와 비슷한 이유를 내포하고 있지만, 역사는 시간적 흐름에 초점을 좀 더 맞추고 있다. 과거 춘추-전국 시대에 이 논의가 등장했던 순간부터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유학의 발전까지 시간적 흐름에 주목한 것이다. 그만큼 이 성선설과 성악설, 더 나아가 고자의 성무선악설이라고 하는 인간의 본성의 논의는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회 정책을 수립하는 게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그 쓸모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물론, 어떤 학문이든 어디에 이용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되지 않겠는가.
인간을 선하게 보면 범죄를 저질렀을 때도 교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먼저 생각한다. 인간은 원래 선하기 때문에 악을 행한 이유를 찾아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인 셈이다. 하지만 인간을 악하게 보면 좀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 테다. 그러므로 인간이, 원래 악한 자가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규칙을 세세하게 만들고 법을 어긴 자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또, 사회에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사회로 다시 돌아오면 '죄를 저질러도 사회로 돌아올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국가의 입장은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것을 정치와 사랑의 관계에 대입해 보자.
위 사진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마바의 연설 사전이다. 이처럼 우리가 '정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여러 단어 중 하나는 '정치인'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삶과 관련된 여러 일들은 모두 정치와 관련된 것이다. 넓게 보면 외교도, 통상도 모두 정치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가. 통상 정책이 실패하면 고스란히 우리 삶에는 여러 직격탄이 날아든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한 청년이라면 1인 가구라도 이 말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질환이 있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은 더 예민하게 바로 알아차린다. 우리 집에도 신장 보조제를 먹어야하는 고양이가 두 마리나 있는데, 예전에 5만 원 남짓하던 보조제가 지금은 13만 원 남짓이다. 안 먹일 수 없으니 내가 사려던 것 하나 내려놓고 영양제를 사게 된다. 환율이 오르면서 수입산 사료를 사 먹이던 사람들은 모두 가계에 직격탄을 맞았다. 뭘 하나 살 때마다 욕이 나오지 않는 날이 없다. 플랫폼에서 뿌리는 온갖 할인 쿠폰을 적용해도 예전에 샀던 것보다 비싸다. 그럼 자연스럽게 내 물건을 사지 않는다. 내수가 침체되는 거다. 반려동물 기르는 사람이 1000만 명 시대라고 하니, 그중 10%만 비슷한 상황이어도 100만 명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그만큼 내 인생 아주 깊은 데까지, 사소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토록 중요한 정치를 우리는 매일 할 수 없다. 매일 광장에 나와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일단 시간이 없다. 주 52시간도 간신히 지키는 나라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에 모이겠다고? 탄핵을 위한 집회를 하던 그 4달 남짓한 시간 동안 외국에서는 '직장 퇴근 후 집회에 참석하는 한국인'을 매우 신기해 했다고 한다. 그들 관념에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당시 단순히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광장에 나간 게 아니다. 이러다 정말 나라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간 거다. 그러니 이것은 특수한 상황이라 논외로 치고, 평소의 우리는 광장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 누군가는 매일 투쟁하지만, 조명 받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가 그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자연스레 관심도가 떨어진다. 이번 광장의 만남 덕분에 넓혀진 저변은 쉽게 좁혀지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어떤 법적 제도를 만들거나 할 수는 없다. 그것을 대리하는 이들이 해야 한다. 그게 바로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이다. 그래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는 많은 권한이 있다. 우리가 직접 뽑는 대리인이니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그 과정에서 이젠 단순히 공약이 얼마나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을 사랑할 줄 모르는, 국민과 자신을 뽑아주는 주권자를 사랑할 줄 모르는 대리인을 뽑지 않기 위해서는 그가 얼마나 인류에 대한 애정이 있는지를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 시절 의전 비서관이었던 탁현민 공연 기획자는 그 시절에 대해 방송에서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자부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솔직히 말하면 24시간 365일 일해야 하는데, 수천 억을 받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얻게 되겠지만, 그건 정권이 연장되지 않으면 되려 내 목을 조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그 말에는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래, 원래 공직이란 그런 거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건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과 거의 같다. 자신을 뽑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위는 반드시 진정성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결국 잘 정치라는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 자신을 뽑아주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감정도 필요하다는 거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람들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불행하지 않다. 그들이 불행하면 그들과 함께 가야 하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부모가 불행하면 아이도 불행하다. 공직자와 국민의 관계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겠으나, 사랑 없이 권력을 쥔 자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이미 수도 없이 봐 오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