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의 반란이라는 말, 서울시장

by 에이
12월 5일 폭설 당시 정원오 구청장 SNS에 올라왔던 CCTV 사진

운전을 시작한 뒤부터 눈을 싫어하게 됐다. 도로가 얼어붙는 건 최악이니까. 그러다 얼마 전 키우는 고양이가 다니는 병원 근처에서 도로 열선을 깔고 있다는 현수막을 봤다. 누가 도로에 열선을 깔 생각을 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로 열선은 운전자 입장에서 탁월한 제설 장치 같아 보였으니까. 아직도 3년에 한 번씩 겨우 눈이 쌓이는 남쪽에서 자란 내게는 서울의 눈이 어색할 따름이다.


그날 여의도에서는 다섯 시간을 갇혀 있었다는 사람이 나왔다. 나 역시 그만큼은 아니어도 인천에서 서울로 넘어오는 길에 평소보다 긴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야 했다. 서울시가 제설에 실패한 거다. 물론 서울시 탓만 할 수는 없다. 퇴근 시간이 시작될 무렵 날린 눈발이 굵은 게 어디 서울시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문제던가.


서울 시장이라는 자리는 언제나, 거의 늘 중요했다. 그래도 내 손으로 뽑아본 적은 없다. 그냥, 22년 지선을 패배한 뒤 서울에 살기 시작했으니 왜 성동구에 살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만 있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총선도 대선도 아닌 지선을 기다렸던 4년이다. 한강버스, 민간 중심의 공공 주택 공급, 조형물 설치에 쏟는 과다한 비용, 종묘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다. 차고 넘친다는 표현은 여기에 어울릴 테다.


그렇다면 누구를 서울 시장 후보로 내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당뿐만 아니라 내 삶과도 직결된 문제이므로 이 즈음 되면 후보로 나서겠다는 사람들의 면면을 두루 살필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예산의 규모가 다른 지자체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고, 그 자리가 가는 상징성이랄 것이 남다르다. 그러나 지난 몇 년의 경험으로 더는 상징성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일 잘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뒀더니 느끼는 효능감이 다른데, 시장은 오죽하겠나.


누군가는 눈 오는 거리 정비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정원오 구청장은 이제야 주목 받고 있는 사람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뭐만 하면 우리 구청장의 선호도 조사가 정원오 구청장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떠들어대는 거겠지. 덕분에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원하는 서울 시장 후보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니 몇몇 구청장들께는 감사를 표한다. 뉴스공장에서 정원오 구청장은 강화에 눈이 많이 오면 한두 시간 뒤 성동구에도 비슷한 양의 눈이 온다는 것을 오랜 기간 관찰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의사 결정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수십, 수백만의 일상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이 정도의 합리적인 의사결정 능력이 필요하단 거다. 성동구의 12월 5일 거리가 얼지 않은 건 우연히 얻어 걸린 결과물이 아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 X 게시물

이재명 대통령을 윤석열이 죽이려고 하는 바람에, 무리한 검찰력을 동원하고 대법원까지 동조하는 바람에 그게 '내 일'이 됐던 경험도 있을 텐데 왜 이런 일을 걸고 넘어지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언론은 그에게 불의에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소신도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나야 일 잘하는 사람이 시장이 된 서울에서 서울 주민으로 살고 싶다지만, 그쪽에서는 서울 시장 자리를 고스란히 뺏기는 꼴일 텐데도. 서울 시정 걱정으로 정말 일 잘하는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길 바라는 것은 아닐 텐데, 어쩌면 아직도 자신들이 전하는 정보만을 사람들이 믿는다는 착각 속에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첨언하건대 꿈은 빨리 깰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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