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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원형의 책 19화

오즈의 마법사

L.프랭크 바움

by 고양이스웨터

<오즈의 마법사>를 읽는 몇 가지 방법



1900년, 라이먼 프랭크 바움이 "오로지 오늘날의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썼다는 《오즈의 마법사》는 그로부터 백 년 하고도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고전’이 되었다. 영화나 뮤지컬로 많이 접하지만 활자와 그림으로 읽으면 더 재미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독자는 처하고 있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읽는데, 우선 판타지 동화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도로시는 캔자스 주의 넓은 들녘 한복판에서 농부인 헨리 아저씨, 엠 아줌마와 함께 산다. 사방에 보이는 것은 온통 잿빛 들판뿐인 곳에서 도로시에게 강아지 토토는 유일한 친구이다. 어느 날,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토토와 도로시가 함께 있던 집을 날려 낯설고 아름다운 장소에 내려놓는다. 도로시는 먼치킨의 나라에서 나쁜 마녀를 물리치고 마법의 힘을 활용해 집으로 돌아온다. 고립된 아이가 다른 차원의 세계를 경험하고 한 단계 성장하여 돌아온다는 판타지 동화의 구도이다.


판타지적 요소가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면 어떤 어른들은 이 책을 한 편의 우화로 접근했다. 1964년 역사 교사였던 헨리 리틀필드가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의 정치상황과 통화제도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시작이다. 당시 금본위 통화제로 인한 디플레이션(통화량이 줄어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을 은본위제로 극복하지는 메시지가 이야기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그렇게 바라볼 때 도로시는 미국의 서민이고, 뇌가 없는 허수아비는 순진한 농민, 양철나무꾼은 인간성을 상실한 산업노동자, 용기 없는 사자는 무능한 정치인, 사기꾼 마법사는 그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은행, 은구두는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 본위 통화제를 의미한다. 이런 식의 알레고리는 의미의 확장이 가능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훌륭한 판타지 동화이고 우화이기도 하지만 민담이 지닌 미덕을 그대로 계승한다. 민담에는 인류 보편의 소망이 담겨 있다. 떠나고 싶은 소망, 돌아가고 싶은 소망, 타인과 어울려 살고 싶은 소망, 악을 물리치고 싶은 소망. 도로시는 고향에 돌아가게 해 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오즈를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착한 마녀나 원숭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삶의 과정에서 조력자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민담이 가진 힘이다. 또한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진리도 있다. 스스로 “저는 작고 착한 도로시예요.”라고 말하는 도로시가 서쪽마녀를 물리치는 장면에서 최후의 순간 마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난 평생 동안 못되게 살았지만, 너 같은 꼬마한테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저한 자기 성찰이다!


서쪽마녀는 죽기 전에 이런 메시지도 던진다.

“이 계집애는 자기가 가진 힘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내 노예로 만들 수 있다.”

이 문장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도 이 책을 활용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허수아비와 양철나무꾼과 사자와 도로시의 결핍이 결국 힘이 되었던 것처럼 내가 가진 결핍은 어떤 에너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거다. 그러면 이 책은 주먹 불끈 쥐고 힘차게 살아 보자고 다짐하게 만드는 자기 계발서가 된다. 각각의 등장인물이 가진 속성에 나를 대입하여 과연 나는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겠다.


W.W.덴슬로우가 그린 그림 또한 《오즈의 마법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림이 서사를 돕는다기보다 이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재미있다. 도로시의 집에 깔려 죽은 동쪽마녀를 표현한 그림을 보면, 오직 동화적 상상력으로만 가능한 유머가 느껴진다. 은 구두 신은 발이 삐죽 나와 있고 도로시와 토토가 놀란 모습으로 보고 있다. 일견 평화롭기까지 하지만 마녀가 깔려 죽을 때 내질렀을 비명 소리도 궁금해지고 은 구두를 홀랑 벗겨 도로시에게 주는 먼치킨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아, 은 구두 얘기를 하고 말았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생각한 건 사실, 이거였다.


‘나도 발에 잘 맞는 은 구두 하나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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