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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Oct 03. 2022

아이가 사라진 30분 동안

'아이라는 형벌이자 축복'



잠시 행사 팸플릿을 남편에게 가져다주려고 스무 걸음 정도 걸어갔다 왔을 뿐이다. 바로 뒤돌아 왔는데 아이 보이 않았다. 놀란 마음으로 아이가 있던 장소와 그 주변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이미 온데간데 소리 소문 없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우리 아이 사라져 버렸다.



분명 놀라 울고 있을 텐데 게다가 언어 표현도 능숙하지 않은 아이 아닌가. 다급해진 마음으로 정신없이 헤매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와 멀찍이 떨어져 팸플릿을 보고 있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주원이가 안 보여! 없어졌어! 찾아봐 빨리!" 남편은 주변을 더 큰 반경으로 돌며 아이를 찾아다녔고 나는 아이가 사라진 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뱅글뱅글 돌았다. 시간 늘어진 듯 주변 풍경이 느려지며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행사 홍보용 노랫소리만이 머릿속 가득히 울렸다. 순간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된 듯했다.




"누군가 어른이 우리 아이를 데려갔을 거야. 이렇게 안보 일리가 없어. 아이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잖아. 겁이 많은 앤 데 엄마 아빠 없이 이렇게 멀리 갈리 없는데. 어 하지?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사람이 너무 많아."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떠올랐지만 그 상황에 도움 될 만한 것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굳어버렸고 몸 점점 경직되었. 처음  곳인 데다 주변은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대체 어디로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하는 걸까 아득해지며 아이를 잃어버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애태웠다. 그때 지푸라기를 붙잡는 심정으로 휴대폰을 들어 112 버튼을 눌렀다.



"저기 아이가 없어져서요. 여기가 고성 공룡엑스포예요. 아이를 잃어버렸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도와주세요"


"아이가 언제부터 안보였나요?"


"한 십분, 십오 분쯤 된 거 같아요. 찾아보고 있는데 안 보여요. 아이가 네 살이에요. 아직 자기 신변을 잘 표현하지 못해요."


"아이가 네 살이군요. 어떤 옷을 입고 있죠?"


"... 갈색 반바지요. 흰색티에 갈색 반바지요. 모자를 썼어요. 저기... 탐험가 모자 같은 거요."


"알겠습니다. 어머님 저희가 갈 테니 기다려 주세요. 행사 측에는 연락을 취했나요."


"아니요 아직이요. 제가 지금 있는 위치가 어딘지 잘 파악이 안 돼요. 주변에 도와줄 직원도 안 보요. 죄송해요 도와주세요."


"혹시 모르니 전화 끊고 나면 아이 사진을 이 번호로 좀 보내주세요."



경찰관과 몇 차례 통화를 했지만 내 입에선 의미 전달이 명확하않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직 작고 서툰 존재. 아이가 낯선 곳에서 울며 헤매고 있을 것만 같아서 심장 땅바닥으로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만큼이나 놀란 남편이 내가 있는 근처로 다가왔다. 두 사람 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내가 행사 안내소에 가보고 올게"

 "어. 다녀와줘"

더 이상 둘이서 찾는 건 의미가 없었다.



남편의 모습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피커를 통해 5살 남자아이를 안내소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방송을 들었다. 멈춰있던 숨이 다시 터지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는 네 살이지만 키가 큰 편이니 다섯 살로 봤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제야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처음 들어온 입구 문 쪽을 향해서 뛰어갔다. 안내소 근처에 다다랐을 때쯤 남편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울지도 않고 쭈뼛거리며 먼산을 본다. "아! 이 녀석. 내전부!"

다리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은  아이를 꼭 껴안았다. 영원 같은 30분이 지나갔다.

육아를 하며 미칠 것 같은 날들이 많았는데 이젠 아이가 없으면 미치 않고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아닌 존재를 자신보다 더 소중히 여기 헌신하일은 분명 비이성적이다. 출산과 육아가 가져온 변화는 한 인간에게 파괴 탄생의 경험이었다. 생에서 다시 맛볼 수 없는 기쁨을 얻은 동시에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하염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스의 형벌처럼 가혹했다.

우리 삶에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일은 때때로 이성적이지도 공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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