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울리 Slowly Jan 14. 2023

글에 지문을 새겨 넣는다

캘리그라피 by 편성준 작가





한동안 쓰는 일에 뜸했다. 겨우 몇 편의 글을 썼을 뿐인데 소재마땅찮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쓴 글이 재미, 지혜, 공감 중 무엇하나라도 주고 있는가? 여까지 생각이 이르자 동력이 떨어져 주춤하게 된 것이다. 에라! 연말이니까 재정비 기간을 좀 가져보자! 하며 글쓰기에서 손을 놓았다. 머릿속으로는 매일 글감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에피소드가 떠오르면 노트에 메모를 해두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고 다시 찾아보면 맥락을 잡기엔 너무 허접한 기록 몇 줄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하루가 며칠이 되고 몇 달이 금세 지나갔고 카카오브런치 팀에서 60일 동안 글을 발행하지 않았다는 알림 메시지가 와있다. 역시 꾸준히 쓰지 않으면 성장도 멈춰버린다는 사실을 굳이 경험하고선 힘이 빠져서 어깨를 툭 떨군다. 





어릴 때 시작해 지금까지 꽤 오래 수영을 해왔다. 때문에 수영장 물 안에서 물개(?) 비슷한 흉내를 낼 줄 안다. 바닥을 차고 뻗어나가기도 하고 물속에서 드러누워 수영장 천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잠수도 꾀 멀리까지 한다. 자유형이나 평영 같은 영법으로 헤엄 치는 게 아니라 물개 혹은 고래가 된 듯 배를 뒤집고 드러누워 보기도 하며 몸을 부력에 내 맡긴 채 자유로움을 느껴본다. 수영장에서 나는 염소와 락스 냄새가 익숙할 만큼 오랫동안 힘 빼고 헤엄치는 법을 훈련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프리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글은 손가락 지문 같다.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라는 것은 매 한 가지지만 쓴 사람에 따라 느낌과 색감 향기도 모두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글은 유독 친근하게 느껴지고 내가 경험한 것 마냥 공감이 간다.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기분 좋은 글도 있는데 그런 보석 같은 글을 발견하면 작가의 다음 글을 찾아 읽는 기쁨은 덤이다. 어떤 글은 읽다 보면 작가가 누구인지 짐작되기도 는데, 이런  보면 글에는 분명 고유한 지문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존재를 글에 새겨 넣는 일. 재능이 있어도 꾸준함 없이는 불가능하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이론물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봄은 양자역학 및 상대성이론에 많은 공헌을 했다. 정말이지 양자역학이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그는 이렇게 결심한다.




무엇인가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때 해야 할 최선의 행위는 책을 쓰는 것이다.
다 읽고 난 다음에 쓰는 게 아니라 뭔가를 더 이해하고 싶을 때 쓴다는 뜻이다.




모르니까 쓴다. 더 잘 알기 위해서 써야 한다. 글감, 스타일, 완성도 타령은 접어 넣어두고 그저 쓰는 게 중요하겠다. 누군가 알아봐 주는 문체는 아니라도 내가 알아차릴 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게’ 같이 잘 쓰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