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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Mar 26. 2023

깨달음은 배울 수 있는 것인가?

02.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저기 저분이 바로 부처님이셔.”
*고빈다는 누런 법복을 걸친 그 승려를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
다른 수백 명의 승려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곧 고빈다도 그가 바로 부처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따라가며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고타마는 겸허한 태도로 생각에 잠긴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고요한 얼굴은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아 보였으며
내면을 향하여 그윽한 미소를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감추고 있어 눈에 띄지 않는 그런 미소를 머금고
사뿐사뿐 유유히 튼튼한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더위가 수그러지자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활기를 띠고 모여들었다.
그들은 고타마가 가르치는 설법을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완벽하였고 완전히 평온하였으며 평화로 가득 차 있었다.
고타마는 번뇌의 유래 그리고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에 대해 설법하였다.
그의 고요한 설법은 잔잔하고 맑게 흐르는 물처럼 거침이 없었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깨달은 자. 부처님과의 만남.

과연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는가?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존재하는가?




싯다르타는 고빈다가 하는 말을 듣자 마침 잠을 자고 있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고빈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조롱기가 전혀 없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빈다, 이제 자네는 발걸음을 내디뎠고 그 길을 선택하였네.
항상 자네는 나의 친구였으며, 자네는 내가 가는 길을 한 걸음씩 뒤따라 왔네.
나는 자주 이렇게 생각하곤 하였네
고빈다도 언젠가 나 없이 진정 독자적으로
홀로 발걸음을 내딛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보라고 이제 자네는 어른이 되었으며 자네 스스로 자기 길을 선택한 거야.
친구, 자네가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빌겠어.
자네가 해탈을 얻기 바라.”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영원한 벗, 고빈다의 결심.

각자 정한 길로 접어드는 두 사람.



싯다르타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숲 속을 걸었다.
그때 우연히 고타마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싯다르타가 경외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자 부처의 눈길에는 자비심과 평온함이 가득 넘쳤다.
그는 용기 내어 고타마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세존이시여, 어제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듣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 가르침을 듣기 위해 저는 친구와 함께 먼 길을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의 친구는 당신의 곁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는 당신께 귀의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또다시 순례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세존이시여,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은
당신이 그것을 얻기 위해 나아가던 도중에
스스로의 구도행위로 부터, 생각을 통하여 얻어졌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세존께서 몸소 겪으셨던 것에 관한 비밀.
즉 수십만 명 가운데 혼자만 체험하셨던 그 비밀이 그 가르침 속에는 들어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진정한 깨달음은 무엇인가? 깨달음은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부처는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자인가?

싯다르타의 의심과 의구심.







*고빈다: 싯다르타의 친구. 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

*고타마: 석가모니. 부처님.

*해탈: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상태. 속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의 상태.

*세존: 불교를 관장하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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