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자기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자
자기를 빙 둘러싼 주위의 세계가 녹아 없어졌으며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홀로 외롭게 서 있던 이 순간으로부터
냉기와 절망의 순간으로부터 벗어나
예전보다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응집시킨 채 불쑥 일어났다.
그는 이것이야 말로 깨달음의 마지막 전율, 탄생의 마지막 경련이었다고 느꼈다.
이윽고 그는 다시 발걸음을 떼더니 신속하고 성급하게 걷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집으로 가는 것도
이제 더 이상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도
이제 더 이상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바라문으로서의 정해진 길을 버리고, 아버지로 부터의 신임을 버리고, 사제의 길을 택하였던 싯다르타는 수행을 통해 자기 *초탈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윤회의 수레바퀴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다시 자아로 돌아와 있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갈증을 느꼈고 그 갈증을 해소하였으며, 또다시 새로운 갈증을 느꼈다. 불교에서는 살아 있음이 곧 고통이라고 했는데, 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고통을 나타낸 것이다.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은 존재할까? 종교에 귀의해 오랜 시간 수행과 명상, 내려놓음을 체화했다고 하더라도, 자기에 대한 욕망의 갈증을 느끼지 않는 일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단순소박하게,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니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달과 별들도 아름다웠고, 시냇물과 강기슭, 숲과 바위, 염소와 황금풍뎅이, 꽃과 나비도 아름답게 보였다.
아무 불신도 없이 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는 당시 고타마에게, 부처인 그의 소중한 보물과 불가사의한 신비는 그의 가르침이 아니라
일찍이 도를 깨닫는 순간부터 몸소 체험하였던 것
그러니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며
가르칠 수도 없는 그런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 자신을 몸소 체험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자기가 바로 아트만이며, 가장 본질적인 것 즉 *범아일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면의 소리에 따랐다.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이처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었으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사색과 절제, 배움과 수행의 길을 등뒤로 한채 오로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라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떤 만남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진정 그는 깨달은 자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삶을 통해 과연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계속 그의 뒤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바라문: 고대 인도의 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으로 제사와 교육을 담당, 브라만과 동일어
*윤회: 생명이 있는 것, 중생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불교 사상
*초탈: 세속적이거나 일반적인 한계를 벗어나는 것
*범아일여: 우주와 개인이 곧 하나라고 보는 것
우주의 원리인 범(brahman)과 개인의 원리인 아(atman)가 같다는 고대인도 경전(우파니샤드)의 세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