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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인더 Apr 18. 2023

뱃사공, 바주데바

07.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끝임 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오, 과연 누가 이 사실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으리 



그가 나루터에 다다랐을 때 마침 나룻배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옛날 그가 젊은 시절 사문이었을 때 강을 건네주었던 바로 그 뱃사공이 나룻배 안에 서 있었다. 싯다르타는 비록 그 뱃사공이 아주 심하게 늙어 있어서 알아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그 뱃사공을 알아보았다. 
“나를 건네주시겠소?” 싯다르타가 물었다. 
뱃사공은 이렇게 신분이 높은 사람이 혼자서 걸어온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그를 나룻배에 태우고 노를 저어 나갔다. 
“당신은 멋진 인생을 택하셨습니다.” 승객인 싯다르타가 말하였다. 
“그렇지만 나으리가 이 일을 하신다면 이 일에 금방 흥미를 잃고 말 것입니다. 이 일은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분들이 할 일이 아니지요.”


“아,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여행을 계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공양반 당신이 나에게 몸을 가릴 낡은 옷 조각이라도 주시고 나를 당신의 조수로, 아니 그보다는 제자로 받아들여 주신다면 제일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나는 배를 젓는 법부터 배워야 하니까 말입니다.”


“이제야 당신을 알아보겠군요. 마침내 그 뱃사공이 말문을 열었다. 언젠가 당신은 나의 오두막 집에서 잠을 잔 적이 있었어요. 무척 오래전의 일이었지요.”
“반갑습니다. 싯다르타. 참 잘 오셨습니다. 내 이름은 바주데바라고 합니다. 당신이 오늘도 나의 손님이 되어 나의 오두막에서 주무시고 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당신이 어디에서 오는 길이며, 당신의 그 좋은 옷들이 무엇 때문에 당신에게 그렇게 귀찮은 존재가 되었는지 이야기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누군가 절실한 마음에서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나는 어떠한 바람 없이, 충고나 판단 없이 바주데바와 같이 그저 귀 기울인 채로 들었던 적이 있었나. 반드시 무엇인가 주지 않아도 상대의 말을 듣는 행위 그 자체로 상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애써서 도움 될 만한 말을 찾아 하거나, 어쭙잖은 조언을 하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하고 나니 누군가 내게 진심을 보여주려 하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게 된다.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제대로 듣는 법을 아는 사람. 그저 듣는 사람. 




싯다르타는  뱃사공에게 자신의 내력과 인생을, 그리고 바로 오늘 그 절망의 순간에 자기가 살아온 인생이 자기 눈앞에 어떻게 나타났던가 이야기하였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 그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바주데바는 매우 주의 깊게 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는 싯다르타가 이야기하는 내력, 유년시절, 배움, 구도행위, 기쁨, 곤경 이 모든 것을 경청하면서 자기 내면에 받아들였다. 이것이야 말로 뱃사공의 가장 큰 미덕들 가운데 하나였으니, 남의 말을 그보다 더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싯다르타는 이런 식으로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자신을 고백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구도 행위, 자신의 고뇌를 털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느꼈다. 


싯다르타는 그 뱃사공 집에 머물면서 나룻배 다루는 법을 배웠으며, 나루터에서 할 일이 없을 때에는 바주데바와 함께 들에 나가 일을 하거나, 땔감을 장만해 오거나, 바나나 열매를 따거나 하였다. 바주데바가 그에게 가르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그 강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강으로부터 그는 쉴 새 없이 배웠다. 그는 강으로부터 무엇보다 경청하는 법, 그러니까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영혼, 활짝 열린 영혼으로, 격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배웠다. 



싯다르타의 미소는 점점 더 뱃사공을 닮아 갔다. 그의 미소는 뱃사공의 미소와 거의 마찬가지고 발은 빛을 발하였고, 거의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밝게 빛났으며, 그 뱃사공의 미소와 꼭 마찬가지로 수천 개의 잔주름으로 빛을 발하고 , 꼭 마찬가지로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꼭 마찬가지로 노인다워 보였다. 



싯다르타(1922) 헤르만 헤세  




그렇지,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는 일.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 나에게는 그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있었나. 몇몇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내 인생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가장 위대한 사람은,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상냥하게, 정성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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